노인빈곤율 1위... 폐지수집 노인 시급 1000원
폐지 고가에 구입... ‘캔버스’로 제작해 판매
쌀포대 활용한 ‘페이퍼레더’로 일자리 창출

인천투데이=이재희 기자│“우리나라 폐지 줍는 노인 1만5000명이 도와야할 대상이 아닌 자원재생활동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기우진 사회적기업 러블리페이퍼 대표는 지난 22일 인천사람과문화(이사장 신현수)가 주최한 제92회 인천마당에서 ‘폐지수거 어르신들과의 10년과의 동행’을 주제로 강연하며 이같이 밝혔다 .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가 지난 22일 제92회 인천마당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가 지난 22일 제92회 인천마당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러블리페이퍼는 인천 부평구 소재 사회적기업으로, 폐지 줍는 노인들이 자원재생활동가로 활동할 수 있게 폐지를 고가로 매입하고 이를 업사이클링한 제품을 판매해 수익을 낸다.

기우진 대표는 “2013년 우연히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정보를 접하면서 처음 폐지 줍는 노인에 대한 문제 인식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10년이 지난 현재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기준 OECD 국가 평균 노년층 빈곤율은 약 15%이지만, 한국은 2.5배 이상인 약 5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소 생활비를 확보하지 못하는 노인이 그만큼 많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 OECD중 1위... 폐지 줍는 노인 시급 1000원 미만

인천의 한 노인이 폐지를 주워 운반하고 있다.(사진제공 기우진 대표)
인천의 한 노인이 폐지를 주워 운반하고 있다.(사진제공 기우진 대표)

기 대표는 “폐지줍는 노인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11시간, 이동 거리는 약 13km에 이른다”며 “그렇게 일하더라도 1인당 시급이 약 1000원을 넘기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후를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사각지대에 내몰린 빈곤 노인들과 함께 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기 대표는 지난 2013년 ‘종이나눔운동본부’라는 봉사단체를 만들었다. 말 그대로 종이가 많이 배출되는 기관인 학교 등에 기부를 요청하고 폐지를 몇 톤씩 받았다. 폐지를 판매한 돈은 노인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했다.

첫 시작을 한 동인천고등학교에서만 6톤이 배출됐다. 이후 원당고교, 부평고교, 논현고교, 정석항공고교, 구월여자중학교 등 인천 학교 곳곳으로 기부활동이 번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2018년 폐지 가격이 1kg당 80원까지 떨어지면서,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졌다.

기 대표는 "당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던 중, 노인들이 주운 폐지를 구입해 ‘upcyclling(업사이클링, 재활용)’해보자는 생각을 처음 했다"며 "이후 '폐박스를 캔버스로 만들고, 거기에 그림을 그려 판매해볼까' 생각했다. 러블리페이퍼의 시작이었다"고 밝혔다.

폐지 활용한 ‘페이퍼캔버스’에 재능기부 그림 더했다

러블리페이퍼에서 판매하는 폐지를 활용한 '페이퍼캔버스'.(사진제공 러블리페이퍼)
러블리페이퍼에서 판매하는 폐지를 활용한 '페이퍼캔버스'.(사진제공 러블리페이퍼)

러블리페이퍼는 폐지 줍는 노인들의 폐지를 대량 구매해 캔버스로 만든다. 일반적으로 폐지 1kg당 50원 남짓으로 값이 매겨지지만, 러블리페이퍼는 1kg당 300원에 구매한다.

폐지 줍는 노인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주겠다는 취지이다. 그 위에 그림을 그려 판매한 수익금은 다시 폐지 수거 노인의 여가활동을 지원하고, 안전물품을 제공하는 데 사용한다.

노인들이 캔버스 키트를 만들면, 러블리페이퍼는 이를 재능기부 작가들에게 보낸다. 작가들이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려 다시 러블리페이퍼에 보내면, 이를 완제품으로 판매한다.

러블리페이퍼는 CJ, SK, 신세계, 롯데, 하나금융그룹 등 기업의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사회적공헌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기업에 러블리페이퍼의 캔버스 키트를 제공하고, 그림을 받아 판매하는 방식이다.

또한 학교 교육에도 활용할 수 있게 따로 미니 캔버스 키트를 만들었다. 약 6년간 학교 100곳에서 학생 3만명이 참여했다. 인천시 자원순환과와 인천 북부교육지원청, 부평구 관내 학교 30곳 등도 참여했다.

이 밖에도 기 대표는 노인 일자리를 더 창출하기 위해 종이 쌀포대를 활용해 ‘페이퍼 레더’를 만들고 이를 활용한 제품을 출시했다. 페이크 레더 원단 제작은 노인들이 맡고, 이후 공장에 맡겨 제품을 제작한다.

기 대표는 “호텔에서 버려지는 침대 시트와 종이 쌀포대 쓰레기를 활용해 원단을 만들었다”며 “판매처를 늘려 더 많은 노인을 고용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러블리페이퍼에서 일하는 어르신들.(사진제공 러블리페이퍼)
러블리페이퍼에서 일하는 어르신들.(사진제공 러블리페이퍼)

연민 관점에서 벗어나 ‘자원재생활동가’로 바라봐야

기 대표는 폐지수거 노인을 연민이 아닌 ‘자원재생활동가’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 대표는 “한국이 OECD 국가 중 자원재활용 2위인데, 이 중 폐지 재활용이 70%를 차지한다”며 “노인들이 폐지를 줍는 것은 국가 신용등급을 높이는 일이며, 더 나아가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폐지 줍는 노인의 노동력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연간 825억원이며, 폐지 줍는 노인 1명 당 연간 보호하는 나무는 약 80그루에 이른다”며 “이들을 폐지 줍는 노인이 아닌 ‘자원재생활동가’로 바라보고 대우하는 사회가 만들어진다면 노인 빈곤 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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