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인천청년광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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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이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

43년 전 5월, 전두환의 신군부에 맞서 싸울 것을 결의했던 광주 시민군의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윤상원 열사가 했던 말이다.

그의 말처럼 그날 밤 그들은 패배했다. 전남도청에 남아 최후의 항쟁을 했던 사람들 전부 죽거나 다쳤고, 광주의 시민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전두환은 대통령이 됐다.

매년 이 맘 때 쯤이면, 청년들과 함께 광주에 간다. 당시 연행자들을 가두고 고문하고 재판했던 자유공원, 헬기 사격의 흔적이 남아있는 전일빌딩, 5월의 영령들이 잠든 국립5·18민주묘지, 마지막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까지. 각 공간마다 여러 해설사들이 있어서 갈 때 마다 다른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지만, 묘한 부채감이 느껴진다.

1980년 5월에 함께 싸우다 나만 살아남은 게 미안해서, 내가 태어나고 자라며 평범하게 누렸던 일상을 만들어 준 과거의 이웃들에게 미안해서 해설사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광주를 꼭 기억해달라 부탁한다.

얼마 전, 전두환의 손자인 전우원씨가 광주에 가서 피해자들에게 사과했을 때, 학살의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그 때를 살아보지도 않은 게 뭘 안다고 그러냐”는 반응을 보였다.

나 역시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 지켜왔던 수많은 기록과 당시의 현장, 그리고 무엇보다 여전히 삶을 살고 있는 피해자와 목격자들이 있고, 이들로 인해 진실을 알고, 진심으로 애도하고,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민주주의는, 역사는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고, 반복되지 않을 수 있었다.

유적지를 쭉 둘러보며 5월 27일 새벽에 광주 전역에 울려퍼졌던 시민군의 방송이 귀에 맴돌았다. “시민여러분, 우리를 꼭 기억해주세요.” 열흘동안 광주에서 있었던 무자비한 국가의 폭력과 그에 맞선 시민들의 정의로움과 용기는 43년의 세월을 건너 2023년 우리의 기억에 자리잡았다.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떠올린다. 제대로 된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책임자는 처벌되지 않고, ‘뭐 좋은 일이라고 기억하냐’며 흔적을 지우려는 세력들 앞에, 5월의 광주를 보여주고 싶었다.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광주민주화운동처럼 제대로 잘 남기고, 함께 기억하며 배워야하지 않을까.

그러나 광주 역시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아주 오랫동안 광주의 5월은 입에 담으면 안 되는 이야기로, ‘광주사태’로 불리웠다. 진실을 알고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중인이 돼 지난한 싸움을 했고, 15년이 지나서야 특별법 제정, 법정기념일 지정, 관련자에 대한 보상이 이뤄졌다.

201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5·18 기록물이 등재되면서 인류 사상과 역사의 진보에 큰 가치가 있음이 세계적으로 증명됐다. 이 후 조사로 ‘북한군의 개입은 없었다’는 공식발표가 있었고, 국방부 역시 군의 헬기사격을 공식 인정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광주는 논쟁적이다. 43주년 5·18민주화운동기념식을 3일 앞둔 5월 15일, 전광훈 목사는 5·18민주화운동은 간첩의 소행이고 군의 헬기사격은 없었다며, 5·18 특별법 폐기를 주장하고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소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대통령이 매년 기념식에서 오월정신의 계승을 이야기하고, 후보시절 헌법 전문에 5·18정신을 수록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윤상원 열사가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린다. 그가 말했던, 그들이 승리자가 되는 ‘내일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나의 미래가 되어 다가오는 게 역사라는 시의 구절이 있다. 역사의 사건을 제대로 기억하지 않고, 계승하지 않으면, 또 다시 되풀이되리라.

세월을 건너 역사의 증인이 된 우리는 이 정신을 미래 세대에 잘 전할 의무가 있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살았던 모든 분들의 안녕을 바라며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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