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ㅣ한동안 TV 프로그램에 ‘억대농부’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유행했다. 실제로 도시생활에 지치고 농촌생활을 동경하는 이들에게 ‘억대농부’는 유효한 마케팅처럼 보인다.

거기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은 ‘동굴’을 찾아가고픈 지친 남성들을 위로하면서 귀촌에 또 다른 동기부여를 하는 듯도 하다.

이영수 사람사는농원 대표.
이영수 사람사는농원 대표.

‘억대농부’ 참 달콤한 유혹이다. 자연과 벗하며 살면서 경제적으로도 도시 못지않은 삶을 영위하는 귀농한 삶. 귀농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삶이다. 하지만 꿈과 현실은 가끔씩 일치할 뿐 대부분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인 법이다.

귀농인의 매출이 ‘수억원대’가 되기는 참으로 어렵다. 귀농해서 살집은 어떻게든 마련한다고 해도 우선 농사지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대부분 3억원 규모의 귀농 지원자금을 받는다. 5년간 이자 1%만 갚고 이후 10년간 원금을 해마다 3000만원씩 상환하는 구조다.

귀농정책자금은 일반대출에 비하면 월등히 좋은 조건에서 귀농인들이 대부분 신청한다. 지역별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귀농자금으로 농사지을 땅 2000평 정도를 마련해 그나마 평당 소득이 높은 과수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평당 3만원 매출을 올리기 쉽지 않다.

현실은 6000만원 매출 올리는 귀농인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그나마 나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4~5년 기간엔 투자만 들어가고 소득이 없는 시간을 어떻게든 견뎌야 한다.

정말 정말로 운이 좋아 몇 년 동안 어린 나무도 잘 키우고 죽을힘을 다 해 농사기술도 익혔고, 냉해피해 없이 결실도 잘 맺어 어찌어찌 꿈에 그리던 1억원 매출을 올렸다 치자.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듯이 1억원이 순수익이 아니라는 데 함정이 있다.

보통 과수농사에서 영농자재비 인건비 등 생산비가 30%정도 차지한다. 소득을 낼 시기부터는 연 3000만원씩 귀농자금 원금상환도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1억원 매출을 기록하면 여기서 순수익은 4000만원 정도로 보면 된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여기다가 관수시설도 해야 하고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농약 살포 기계도 사야한다. 또 선별기도 사야하고 작업장도 지어야 하고 저온저장창고도 있어야 하는 등 투자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귀농인들의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또 다시 2~3억원 가량의 영농후계농 자금 대출을 하게 된다.

요새 젊은 귀농한 부부의 평균 대출금은 대략 3~5억원가량으로 추정된다. 10여년 전 귀농열풍이 불어 농사지으러 온 친구들이 요새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매년 원금 수천만원을 갚는 데 너무 힘들어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1년 만에 각 종 농자재 값이 무척 올랐다. 비료값은 130% 면세유는 40% 영농자재비는 30% 농업용전기도 60% 가량 인상됐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불법체류노동자에 대한 일제 단속을 벌여 인부를 구하기도 힘들어 인건비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는 사상 유례가 없는 냉해 피해로 과수 꽃이 결실을 맺지 못해 과수농가들은 한숨만 쉬고 있다.

그야말로 ‘억대농부’의 부푼 꿈을 꾸고 농촌으로 내려온 귀농인들이 버티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형국이다. 귀농16년차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매출을 올리고 있는 나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후배 귀농인들이 버텨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꾹꾹 누르고 귀농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무심한 듯 물어 볼 때가 있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어쩌겠냐는 대답과 함께 그래도 먹고살기만 할 수 있으면 귀농한 것 후회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의외로 많다. 유행어처럼 번진 억대농부는 못됐지만 농촌에서 농사짓고 사는 게 분명 매력이 있긴 한가 보다.

어느덧 귀농 16년차 봄이 지나고 있다. 세상사 모든 일이 그렇듯 우리 부부에게도 말 못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귀농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중의 하나다. 생각보다 농촌살이가 재미있고 보람도 있다. 부디 귀농인들이 억대농부의 허상에 허덕이지 말고 어떻게든 버텨 농촌에서 살아남아 농사형제로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