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1회 새얼아침대화 김윤지 연구위원 강연
1986년 한국영화 시장 최초 개방의 과정
주라기 공원, 정부 문화산업정책 전환 계기
스크린쿼터 폐지 한국 영화 새전환 계기

인천투데이=박규호 기자│“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경제불황과 스크린쿼터제 등 경제위기가 한류의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10일 오전 새얼문화재단이 인천쉐라톤그랜드호텔에서 진행한 제431회 새얼아침대화에서 ‘설계되지 않은 성공, 한류’를 주제로 강연하면 이같이 말했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사진제공 새얼문화재단)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사진제공 새얼문화재단)

김 연구위원은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경제지 기자를 거쳐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문화콘텐츠산업과 경제정책, 중소기업 연구 등을 담당하고 있다.

김 연구위원의 대표작으로는 ▲한류 외전 어크로스 ▲오징어 게임과 콘텐츠 혁명·인물과 사상사 등이 있다.

아래 내용은 10일 김 연구위원의 강연을 정리한 내용이다.<기자말>

한국영화 시장 최초 개방의 과정

한류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가장 큰 요소는 문화의 산업화이다. 한국영화 등 문화 콘텐츠를 산업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 한류가 이 정도로 성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영화가 산업화 될 수 있던 외부 환경 요인은 1986년 우르과이라운드협상(다자간 무역 협정)으로 인한 한국영화 시장의 개방이었다.

1986년부터 시작된 우르과이라운드협상로 인해 처음 할리우드 영화사가 직접 배급을 시작했다. 이전까지 모든 수입 영화는 국내 영화 배급사가 영화를 수입하는 형태의 간접 배급이었다.

이에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직접 배급에 반대하는 영화인들이 직접 배급을 하는 영화관에 뱀을 푸는 등 반발이 있었지만 결국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협상이 최종 타결되면서 한국의 영화산업이 개방됐다.

이 시기 개방으로 UIP코리아 등 미국 영화사가 <위험한 정사> 등을 보급했고, 동시에 영화 수입가격이 오르면서 대안으로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홍콩영화가 유행하기도 했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사진제공 새얼문화재단)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사진제공 새얼문화재단)

주라기 공원, 정부 문화산업정책 전환에 계기

1993년 6월과 7월 <쥬라기 공원>이 각각 미국과 한국에서 개봉하자 김영삼 정부의 문화산업정책의 전환이 이뤄진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쥬라기 공원>으로 영화 과학기술에 관심이 증폭하자 ‘쥬라기공원 1년 흥행수입이 한국 차 150만대 수출과 맞먹는다’라는 문구를 기반으로 문화산업정책국을 신설하는 등 문화산업정책의 전환을 추진한다.

전환 전 김영삼 정부의 문화정책은 전통 문화 지키기, 관광 산업에 특화됐는데, 김영삼 정부는 <쥬라기 공원>의 유행을 경험하고 문화산업 진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 문화산업정책 전환을 추진했다. 

이후 IMF경제불황이 발생한 뒤, 1998년 새롭게 들어선 김대중 정부는 기존 제조업 중심 산업 틀과 다르게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이에 김대중 정부는 문화산업과 벤처산업에 기존 제조업과 똑같은 혜택을 주기로 했다. 또한, 문화산업진흥 기본법 등을 제정하며 문화산업진흥기금 설치하고 실질적인 지원을 하면서 문화산업이 비로소 태동했다.

김대중 정부 문화산업 진흥 정책은 한 가지 특이한 원칙은 ‘팔길이 원칙’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문화부 관료들이 문화산업을 통제하고 규율하는 형태로 문화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고 보고, 정부가 문화산업을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을 도입했다.

김영삼 정부의 문화산업정책국 신설과 김대중 정부의 ‘팔길이 원칙’은 한국 영화산업과 문화산업이 발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원리였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사진제공 새얼문화재단)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사진제공 새얼문화재단)

IMF 외환위기, 한국 드라마 수출 기회

아시아에서 ‘한류’라는 단어가 언급되기 시작한 첫 콘텐츠는 1997년 <MBC>의 ‘사랑이 뭐길래’라는 드라마이다. 한국 내에서 높은 시청율을 기록한 후 중국에 수출돼 시청률 15%라는 대유행을 기록 하면서 ‘한류’가 시작됐다.

1990년대 초, 최초 민영방송국인 <SBS>가 개국하면서 대중문화에도 관심도가 커졌다. 이후 <KBS>, <MBC>, <SBS> 방송 3사 간 광고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더 재미있는 드라마를 생산해야 한다는 방송사의 요구가 커졌다.

또한,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가 출발하면서 기존 군사정부 검열과 통제가 없어져 방송국 드라마에 자유로움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던 드라마는 일본 드라마였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가 터지고 환율이 높아지면서 비싼 일본 드라마를 수입하지 못하게 되자 가격이 싸면서 품질이 좋은 한국 드라마가 타이완을 거점으로 아시아 국가로 퍼졌다.

이에 1997년 <MBC> ‘사랑이 뭐길래’, 2002년 <KBS> ‘겨울연가’, 2005 <MBC> ‘대장금’ 등이 아시아 시장에서 유행했다. 하지만 이때까지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좋았지만 수익은 크게 나지 않았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사진제공 새얼문화재단)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사진제공 새얼문화재단)

스크린쿼터 폐지 한국 영화 새로운 전환 계기

김대중 정부 시절 미국은 1차 스크린쿼터제 폐지와 영화시장에 완전한 개방을 요구했다. 이 때 김대중 정부는 국내 상영 영화 중 한국영화 점유율이 40%가 되기전까진 영화시장을 개방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 시기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미국은 2차로 스크린쿼터 폐지를 요구했고 결국 한국에서 스크린쿼터 폐지가 시행된다.

스크린쿼터 폐지 후 5년간 한국 영화 산업은 침체됐다. 하지만 2010년으로 넘어가면서 한국 영화 산업은 다시 부활한다. 2000년대 중후반 침체 시기가 오히려 한국 영화에 새로운 자극을 줬다.

 

이후 2017년 <넷플릭스> 등 드라마 구독서비스가 도입되면서 한국 문화산업은 또 한번에 도약의 계기를 맞게 된다. 드라마나 영화 등을 다른 국가마다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넷플릭스> 한 곳에 팔면 배급이 되기에 한류는 또 한 번 도약했다.

2022년 일본, 태국, 홍콩, 베트남,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 등 국가 연간 넷플릭스 시청율 10위을 보면, 한국 드라마가 대다수인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한류는 플랫폼구독서비스를 토대로 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수익성에 한계는 있다. <넷플릭스> 플랫폼은 콘텐츠 저작권 자체를 <넷플릭스>가 직접구매해 수익을 거두는 방식이기에 한국 영화사가 수익을 거두는 것에 한계가 있다. 이에 또 한 번에 한류의 세대교체가 과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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