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후 마중물 회원ㆍ만월중 2년
몇 주 전, 나를 잔뜩 흥분한 상태로 집에 돌아오게 만든 일이 있었다. 그 날은 첫 동아리 시간이었다. 동아리는 풋살반. 1ㆍ2학년을 모집했는데, 여자는 나를 포함해 3명뿐이었다. 나는 동아리가 정해지고 가장 먼저 이런 다짐을 했다. ‘여자라서 못할 건 없다는 것을 보여주자. 보여주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뛰자’

그 첫날 연습이 끝나고 경기를 할 차례였다. 그 전까지 여자들끼리만 연습해 조금은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던 나는 신이 나려고 했다. 우리가 다가가자 선생님이 ‘너희는 안 할 거지?’ 물으셨다. 내가 당연히 노우(No)로 답하려는데, 다른 여자애들 2명은 벌써 저쪽에서 줄넘기를 집어 들고 있었다. 그들을 설득하려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귀찮다, 춥다’ 이런 핑계들. 할 수 없이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러 갔다.

그런데 선생님의 말씀은 뜻밖이었다. ‘그럴 줄 알았어’라는 표정과 함께 ‘여자애들 너희는 다치지 않게 다른 것 하고 있어’라는 말씀 딱 한마디만 하셨다. 그리곤 어안이 벙벙한 상태인 나를 두고 남자애들과 축구하러 뛰어가셨다. 그 다음, 경기는 시작됐다. 그럼 여자애들은? 남자애들이 땀을 뻘뻘 흘리는 걸 멀리서 봐야만 했다. 나는 줄넘기로 내 마음을 달래야했고, 어쩌다 공이 내 쪽으로 굴러올 때면 괜한 마음이 들었다.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며칠 전 학교에서 본 성격검사 결과표를 받아들며 이 일이 다시 떠올랐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해설 용지에 ‘민감함’이라는 항목 아래에는 ‘여성적’, ‘둔감함’ 아래에는 ‘남성적’이라고 설명돼있었다. ‘여성적’, ‘남성적’. 우리 사회에서 이 단어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꼼꼼한 성격이 아닌 내가, 무척 꼼꼼한 남자애랑 같이 책을 싸는 일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누군가 그 남자애를 두고 ‘여자애 같다’고 했다. 1학년 때 우리 반의 소심한 성격을 가진 남자애를 두고 선생님들이 하시는 말씀은 늘 ‘사내자식이’로 시작됐다. 밖에 나가서 뛰어놀고 오자는 말을 꺼내기만 하면 거부하고 움츠러드는 여자애들은, 남자애들과 합세해 약하게 생긴 애를 두고 ‘여자애 같다’고 쿡쿡거린다. 이런 일상을 목격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사회 속 ‘여성적’ ‘남성적’이라는 단어들이 딱딱 정의됐다.

여성적: 소극적인 사람을 뜻하며 보호받아야할 존재를 말한다. 민감하고 꼼꼼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활동적이지 않으며 특히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다. 스포츠를 하기 보다는 다치지 않게 있는 걸 좋아한다.

남성적: 적극적인 사람을 뜻한다. 둔감하고 꼼꼼하지 못하다.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스포츠를 좋아한다. 운동할 때 좀처럼 다치지 않는다.

그런데 모든 여성, 남성이 그럴까? 만약 소극적이지도, 스포츠를 싫어하지 않기도, 둔감하기까지 한 여성이 있다면? 소극적이고, 풋살은 물론 스포츠를 싫어하는 남성이 있다면? 그리고 만약 그들이, 어느 날 이 정의가 담긴 백과사전을 본다면?

사소한 실천과 근본적 변화

어안이 벙벙했고, 때론 분했다. 내가 그랬다. 우리 반의 꼼꼼한 남자애를 두고 ‘여자애 같다’고 하는 그 누군가에게 그건 편견이라고 반박해줬고, ‘그럼 꼼꼼하지 못한 난 여자애가 아니고 뭐라는 건데’라고 말하려다 꾹 참았다.

선생님이 소심한 아이를 두고 사내자식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씀을 하실 때는 ‘만약 그 아이가 여자애였어도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라고 상상했다. 그리고 그날, 풋살 경기를 지켜보기만 해야 했을 때는 선생님과 여자애들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런데 그 순간마다 나를 가장 힘없게 했던 것은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도 자신의 말에, 혹은 들은 말에 담긴 잘못된 의식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만약 동아리 선생님이, 여자아이들이, 말 한마디 행동 한번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혹은 남자애들이 같이 하자고 말을 꺼냈더라면 어땠을까.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적어도 개인이 사회가 만들어낸 고정관념에 의해 억압받는 일은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

우리의 일상에서 존재하는 고정된 성역할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것. 이것이 양성평등의 출발점이다. 그 장소는 먼 곳을 바라볼 필요가 없는 바로 여기, 내 주변이어야 하고, 우리의 이야기여야 한다. 나는 여태까지 내 친구들, 선생님들 그리고 모두에게 말하고 싶었다.

주변을 둘러보라고. 사소한 일일지라도, 조금만 귀 기울여보라고. 가다듬고 행동하는 것이 곧 양성평등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 ‘사소한 일’이라는 것은 사실은 사회의 성 고정관념이라는 어마어마하게 굵은 뿌리에서 온 것이라고. 그 큰 뿌리에서 사소한 일들이 왔듯이 큰 뿌리를 뽑아낼 수 있는 것 또한 역시 사소한 노력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사소한 노력들이 모여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낼 것이다.

백과사전에 정의를 미리 넣어놓고 우리에게 집어던져주는 사회가 아닌, 그 백과사전을 읽을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고 너그럽게 바라봐줄 수 있는 사회 말이다. 남자애들, 여자애들 모두 같이 땀을 흘리며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풋살 경기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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