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인천투데이|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1982년 2.39명을 정점으로 1983년 2.03명으로 낮아진 이후 계속 떨어져 2017년 1.05명, 2018년 0.98명으로 1명을 넘지 못하며 계속 감소하고 있다.

유럽경제위원회(UNECE)는 선진국이 현 인구수를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이 적어도 2.1명은 돼야 한다고 추산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현실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지속적인 인구 자연감소 추세로 가면 결국 국가는 소멸되고 말 것이다.

지난 15년 동안 정부는 저출생 대책에 280조원에 달하는 비용을 들였으나 출산율 하락과 결혼 건수 감소를 막지 못했다. 지난 3월 정부는 새로운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의 새로운 저출산 대책, 실효성은 있나

5대 핵심분야 과제는 ▲돌봄 인프라 확충 ▲일·가정 양립 지원 ▲주거 지원 ▲양육비 경감 ▲임신·난임 지원 등이다.

새롭다고는 하나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를 강화하거나 지원금을 확대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들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지속적인 출산율 감소의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고 그에 맞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일하는 부모에게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을 보장한다고 하면서 주 69시간 근무 허용 개편안을 내놓고, 육아휴직은 대상자 중 50%는 육아휴직을 못 쓰고 있다.

돌봄 인프라는 확대되고 있지만, 그 인프라를 활용하기 어려운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하며 아이는 돌봄 공간에서 늦은 밤까지 있어야 한다.

출산 비용과 양육수당 등을 지원하지만 한시적인 지원으로는 한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불안전한 고용과 감당하기 어려운 주거 비용은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 않는다.

‘외국인 가사도우미법’이 저출산 해결?

지난달 21일 시대전환의 조정훈 국회의원이 ‘최저임금 적용 없는 월 100만원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법’을 발의하였고, 논란이 일자 철회했다가 하루 만에 재발의했다.

1978년부터 도입된 싱가포르의 ‘저임금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가 여성의 경제활동을 장려하고 지원하고 있다고 하며, 한국도 저임금의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을 통해 맞벌이 가정의 가사부담을 덜고 여성의 경력단절문제를 해결해 이는 궁극적으로 저출산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외국인이 보이지 않는 곳이 아닌 같은 생활권에서 일하면서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 사회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기에 외국인 가사근로자에게는 최대 5년간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하는 정책 실험의 법적 근거를 만든다는 것이 제안 이유이다.

도대체 저출생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면 이런 시대착오적인 제안을 할 수 있을까.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저임금 가사도우미로 고용하겠다는 발상은 이주여성에 대한 차별과 노동착취를 정당화하는 매우 반인권적 접근이다.

무엇보다도 집안 살림도 하고 아이도 돌보는 등 가정 내 모든 일을 하는 가사와 돌봄노동이 100만원도 안되는 저임금으로 아무나 할 수 있는 노동으로 폄하되며 가사와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후퇴시킬 수 있다.

또한, 최저임금이라도 받을 수 있게 가사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가사근로자법’이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예외조항이 만들어진다면 외국인 가사노동자뿐만 아니라 내국인 가사노동자도 그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껏 여성의 무급노동으로 그 가치가 평가절하됐던 가사노동은 사회를 유지 존속하는데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 노동이며 분명한 임금노동이다. 모든 임금은 노동자의 생계비이며 최저임금은 노동자의 기본적 생계를 보장하는 기준 임금이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도 이 나라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이기에 존엄한 삶을 유지할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그 권리를 보장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이 발의안은 그 책무를 망각한 것이다.

‘가사서비스와 관련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가사근로자의 고용 안정과 근로조건 향상을 도모’한다는 가사노동자법의 목적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정치권에서 내놓은 저출생 대책은 여전히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는 것은 여성인데 그 대책은 남성의 입장과 시각에서 제시되고 있다.

여성가족부를 인구가족부로 개편하지 못해 안달인 정부와 20대에 아이를 셋 낳으면 남성의 병역 면제라는 방안을 내놓는 국회의원은 여성을 ‘출산하는 몸’으로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저임금 외국인 가사도우미 법안 또한 여성을 ‘돌봄하는 몸’으로 보며 도구화한다. 이는 시대를 역행하는 매우 성차별적인 발상이며 성평등의 퇴행이다.

저임금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가 활성화된 홍콩과 싱가포르의 합계출산율은 각 0.75명과 1.02명으로 한국과 함께 세계 최하위권이다. 이는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제도가 저출생 대책이 아닌 인력 부족 대책으로 도입된 것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수치이다.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 활성화 홍콩·싱가포르 합계출산율 높지 않아

조사를 보면, 결혼을 꺼리는 이유로 여성은 ‘가사노동 분담’, 남성은 ‘경제적 이유’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저임금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여성의 가사노동을 분담해주니 여성은 경제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고 이는 남성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어 출산율이 오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지만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합계출산율이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저출생 문제 극복은 구조적인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를 바꾸지 않는다면 요원하다. 한국은 결혼을 하고 싶은 남성의 비율(61%)이 여성의 비율(29%)보다 두 배 이상 높다고 한다. 출생율보다 우선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한 대책이 더 시급해 보인다.

가사와 돌봄의 주체로 남성을 견인하고, 부모가 함께 아이도 키우고 가사도 분담하고 경제활동도 가능하게 일과 생활을 양립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보육서비스의 종료시간과 부모의 퇴근시간을 일치하게 하고, 성별 임금 격차로 여성이 경제활동을 포기하는 일이 없게 격차를 없애야 한다.

무엇보다 누구나 살기 좋은 세상,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라면 이런저런 대책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을 만큼 성평등하고 안전한 세상이라면 이 좋은 세상 이어지길 바라지 않을까, 좋은 세상이 이어지면 좋겠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