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 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장 윤나현

필자의 일터에 '우주방'이라는 공간이 있다. 카펫이 깔린 바닥에 누워 천장에 수놓아진 별과 은하수를 볼 수 있는 작은 공간이다. 장난기로 가득하던 아이들도 이 방에선 사뭇 진지하다.

윤나현 성평등 교육활동가
윤나현 성평등 교육활동가

몸을 비비 꼬던 아이들이 가만히 누워 별자리의 이름을 헤아린다. 클라이맥스는 별똥별이다. 별빛이 차르르 빛나면 아이들은 "와아아아"하고 탄성을 내지른다. 그 순간 동심은 자라난다. 별을 만난 아이들은 반짝인다. 이 넓은 우주 속 이 세상에서 나는 하나뿐인 존재라는 것. 마치 영화 ‘스파이더맨’의 주인공처럼 평범했던 내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런 마음들은 잘 번져나간다. 매일 아옹다옹하던 옆 친구에게도 전달된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된다. 아이들은 그렇게 나와 서로의 소중함을 배워나간다.

물론 이런 경지가 별똥별 쇼 한 번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주방에는 여러 장치가 있다. 임신한 태아의 주수(주의 수, 의학적으로 태아가 정상 호흡을 하면서 태어날 수 있는 주수는 34주이다)별 모형과 아기 인형, 그리고 임산부 인형 등이 그것이다.

아기 침대에 놓인 아기 인형과 태아 모형을 보면서 아기가 어떻게 생기고 자라는지를 듣는 아이들의 눈은 신기함과 궁금증으로 반짝인다. “아기는 물속에서 눈을 어떻게 떠요?”, “어떻게 숨을 쉬어요?”, “탯줄이 꼬이면 어떻게 해요?” 질문이 마구 쏟아진다.

생명 탄생의 비밀을 다 파헤치고 싶은 듯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리고 경이로울 때도 많다. 한번은 “아기가 어떻게 태어날까요?”라고 물으니 한 아이가 “빅뱅”이라고 답했다. 어쩌면 아이들은 생명 탄생의 비밀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나둘 답하며 문답을 이어가는 사이 어느새 이야기는 태아에서 임산부로 이어진다. “애기가 헤엄치면 엄마도 느껴요?”, “저희 엄마는 입덧이 심했다는데, 그게 뭐에요?”, “엄마가 음식을 먹으면 애기가 같이 먹어요?” 등.

심장이 뛰고 발을 구르고 소리를 듣게 되는 한 인간의 발달은 다른 한 사람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기에 임산부에게 몸과 마음의 안정이 필수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임산부에겐 먹는 것, 자는 것, 움직이는 것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아이들과 임산부가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함께 이야기한다. 일상에서 어떤 일들을 겪을 수 있는지, 임산부를 둘러싼 여러 환경에 관해 말이다.

“무거운 걸 드는 걸 도와줘야 할 것 같아요”, “병원에 편하게 갈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아이를 맡길 데가 필요할 것 같아요”, “자리를 양보해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이내 “임산부 배려석에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앉은 걸 본 적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아이가 나온다. 그러면 “맞아! 맞아! 나도 봤어!”하며 동그란 눈으로 일제히 선생님을 쳐다본다.

아이들의 목격담에는 일리가 있다. 2019년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비임산부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것을 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조사자의 50%가 넘었다. 그리고 응답자의 31%가 ‘임신 중이 아닌데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20년 서울도시철도 고객센터가 접수한 민원 중 임산부 배려석과 관련한 민원은 월평균 730여건에 달한다고 한다. 2009년 9월 서울시가 처음으로 시내버스에 도입했고 4년 뒤 서울도시철도에 도입된 이후 국내 도시철도로 확산됐다.

하지만 10년이 넘은 정책임에도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갈등은 진행형이다. 무엇이 문제일 걸까. 사람들의 이기심? 혹은 공감대 부족? 혹은 실효성 부족일까?

조사에 따르면 임산부 배려석이 필요하다는 데에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돼 있다. 위의 설문에서 응답자의 90%가 임산부 배려석이 필요하다고 답한 걸로 조사됐다.

하지만 임산부 배려석을 항상 비워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은 갈린다. ‘내가 비워두어도 임산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앉더라’는 경험치가 공감대를 무색하게 만든다.

사람들로 가득한 전철을 다시 떠올려본다. 무표정한 얼굴들로 가득하다. 피곤함이 가시지 않은 채 출근길에 오르는 사람들, 하루의 고단함을 짊어지고 퇴근하는 사람들. 몸 하나 기댈 곳을 찾아 눈을 바쁘게 움직인다.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핑크 카펫’ 오늘 우리 삶은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할 여유가 있는가. 우리 사회는 그들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저출생 문제를 "100만원 외국인 가사도우미", "육아의 외주화" 등 더 가난한 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정책이 정부정책으로 등장하는 나라에서 과연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갈등이 해결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생명의 소중함과 인간의 존엄을 이제 막 깨우친 ‘우주방’의 아이들, “왜 임산부 배려석에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는지” 묻는 그 별들에게 우리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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