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인천청년광장 대표

이정은 인천청년광장 대표
이정은 인천청년광장 대표

인천투데이|‘야근, 야근, 야근, 야근, 야근, 병원, 기절’. 지난달 말 개그 콘텐츠로 구독자 157만명이 있는 유튜브 채널 ‘너덜트’에 올라온 영상의 제목이다.

영상에는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노동시간 개편안에 따라 주 69시간 근무를 하게 된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모습을 한 편의 짧은 드라마처럼 다뤘다.

영상은 “일이 많을 때는 바짝 일하고, 일이 없을 땐 쉴 수도 있는 아주 탄력적이고도 유연한 주 69시간 근로제를 우리 회사도 실시한다“는 대표의 말로 시작하며 제도가 시행되고 5주 간의 모습을 짧게 다룬다.

그 과정에서 포괄임금제로 야근 수당을 받을 수 없어 일 하는 시간이 늘어나도 임금은 늘어나지 않고, 연차도 쓰기 어려울 정도로 일이 많고 사람이 없어 쉬는 날 없이 장시간 노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해당 영상에선 ‘코믹숏무비’라는 해시태그가 달렸지만, 코믹하지도, 영화같지도 않았다. ‘저렇게 일 못 시킨다고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야기하는데 실제 직장인으로서 말하자면 저건 하나의 과장도 없는 진짜 리얼입니다’라는 댓글에 일 만 명이 넘게 ‘좋아요’를 눌렀다.

이미 한국에선 한 해 500명이 넘는 사람이 과로로 사망한다. 사망한 노동자 중 ‘주 60시간’ 이상 일한 사람의 산재 승인률은 90%가 넘는다.

즉, 주 60시간을 일하다 과로질병인 뇌심혈관질병으로 숨져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 10명 중 9명이 산재로 인정을 받은 셈이다. 고용노동부도 이같은 위험을 인지하고 있어 고시로 ‘과로사 인정 기준이 4주 평균 64시간’이라고 고지하고 있다.

며칠 전 노동시간 개편안 담당 공무원들이 주 60시간 이상 근무하면서도 무급 야근을 하며, 몰아서 쉴 수 있는 휴가일수를 적립하지 않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정책의 비현실성이 드러난 것이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쉰다’는 정부의 구상과는 달리 ‘몰아서 일하고 기절’하거나 ‘몰아서 계속 일하다 과로사’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정부와 노동부는 노동시간 개편안을 이야기하며 자꾸만 MZ세대를 가져다 쓴다. 그들의 주변에 있는 MZ는 누구인가, 있긴 한건가. 현재 법적으로 정해진 연차, 육아휴직도 제대로 쓸 수 없는 현실에서 ‘몰아서 쉬는’게 불가능하다는 건 일하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내가 쉬는 순간 당장의 내 업무는 동료의 업무 과중으로 돌아오고, 더한 경우에는 대체할 사람 조차 없다. 실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라면, ‘몰아서’가 아니라 현재 주 52시간으로 되어있는 노동시간을 줄이면 된다.

동료 청년들과 모임을 하던 중 누군가 툭 물었다. ”다들 어떻게 쉬어요? 전 쉬는 법을 까먹은 거 같아요. 드라마나 책 보라는 이야기 많이 들어서 한 번 해봤는데, 죄책감이 자꾸 들고, 뭔가 마무리 못한 일이 있지는 않나 계속 생각하게 되고 불안하더라고요.“

주변에서 워커홀릭이라며, 그러다 몸 망가진다고 자주 걱정의 대상이 되던 친구였다. 여기저기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음... 쉬는 거 잘 모르겠네. 쉼을 당하는 거 같아. 더 이상 못 버틸 때까지 가면 쉬게 되던데.“ 자리에 있던 청년 5명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속상했다. 밤낮없이 돌아가던 기계가 과열돼 연기를 내뿜으며 전원이 꺼지는 모습이 상상됐다.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었다. 태어남과 동시에 경주마가 돼 살아온 삶은 뒤쳐질까봐, 추락할까봐 내내 불안했다.

무언가를 해도 불안하고 하지 않아도 불안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아온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제 쉴 시간이야’라고 말해주는 누군가이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어 꺼지는 기계처럼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는 게 아니라, 일과 휴식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미래를 원한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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