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지난 4월 중순께 인천의 대표적 시민단체인 평화와참여로가는인천연대(이하 인천연대)와 인천연대 회원을 비롯한 시민 150여명 이상의 은행계좌를 국가보안법 관련 수사를 이유로 들춰본 것으로 드러나, 상당한 파장이 일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은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인천연대 농협 계좌를 수사했고, 농협에 ‘수사상 사법절차 방해 우려’를 이유로 들어 계좌 고객에게 금융정보거래 제공 사실을 통보하는 것을 6개월 후까지 유예할 것을 요구했다.

국정원의 이번 계좌 수사는 올해 1월 시작된 인천지역 교사들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조사와 관련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정원은 이 계좌 수사가 국가보안법 관련 조사 대상자와 한 번이라도 금융거래를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인천연대는, 국정원이 수사한 인천연대 계좌는 2006년에 개설된 것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조사 받은 교사들과 거래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당사자에게 동의를 구하지도, 적어도 알리지도 않은 상황에서 은행 거래를 함부로 뒤지는 것은 옳지 않다. 특히 인천연대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국정원의 이번 계좌 수사는 시민단체 사찰임이 분명하다.

국정원의 무차별 금융거래 수사가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벌어졌고, 그 사실이 12월 대선을 앞두고 알려지면서 국가기관이 선거를 앞두고 공안정국을 조성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정치공작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국가기관이 편법 또는 불법을 동원해 자행한 민간인 사찰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국무총리실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김종익씨에 대한 사찰을 비롯해 김미화, 김제동 등 정부에 비판적 입장을 보인 방송인에 대한 사찰 논란 등,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국가기관에 의한 민간인 사찰은 도를 넘어섰다. 국정원의 이번 계좌 수사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국가정보원이 피의자로 지목한 사람과 금융거래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민간인을 일방적이고 무차별적으로 사찰하는 것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한 국가권력의 남용에 해당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국가정보원의 이러한 행태로 인해 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했으며, 그들은 불안과 공포를 호소하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해 이른바 ‘왕재산 간첩단’ 사건을 발표한 뒤 인천지역 시민사회 인사 150명 정도를 소환해 조사했는데, 사단법인 인권의학연구소가 ‘왕재산’ 사건 관련자 인권 피해 실태를 조사해 분석한 것을 보면, 국정원 조사를 받은 자 중 70%가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을 보였고, 이 가운데 15%는 ‘위험 가능군’으로 분류했다.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지킨다는 허울로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국가기관의 민간인 사찰은 독재정권을 연장하기 수단으로 사용된 구시대적 유물이다. 국정원의 이번 계좌 수사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상 규명과 함께, 국정원의 수사권 견제를 위한 법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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