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익 민주노총 인천본부 조직국장

이동익 민주노총인천본부 조직국장
이동익 민주노총인천본부 조직국장

인천투데이|미국에선 맡은 일만 최소한으로 소화하는 직장인을 가리키는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자발적 퇴직이 급증하는 추세를 의미하는 ‘대퇴사’(The Great Resignation) 등 일을 적게 하자는 의미에서 신조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주당 노동시간 69시간 확대 발언에 대한 논란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방송 CNN과 NBC는 “한국에서 주당 근로시간 상한을 52시간에서 69시간으로 늘리는 방안이 젊은 노동자들의 극심한 반발과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과 관련한 세대 간 논쟁도 촉발됐다”라며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의 일중독 문화’가 있는 한국의 경우 과도한 노동과 관련한 우려가 특히나 심각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호주 ABC 방송은 노동시간 확대에 대한 논란을 전하면서 과로사를 발음 그대로 ‘kwarosa’로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2021년 기준 한국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1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 중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에 이어 네 번째로 길다. 미국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각각 1791시간과 1490시간이다.

안타깝게도 순위가 바뀌게 될 것 같다. 칠레가 주 45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는 법안을 상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오는 5월 1일 노동절부터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이슬란드, 스페인, 벨기에, 호주,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나라가 주 4일 노동제를 시행하거나 실험하고 있다. 경제 규모 세계 12위라는 대한민국만 나 홀로 역주행을 하는 꼴이다.

장시간 노동의 폐해는 자살, 저출산 등 다양한 사회병리 현상을 낳고 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부동의 1위(인구 10만 명당 26명)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과로사’는 과중한 업무로 인한 피로로 뇌출혈 등 뇌심혈관 질환이 나타나 숨지는 것으로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은 한국·일본·대만 등에만 있는 특이한 현상이다.

‘과로자살’은 장시간 노동, 실적 압박, 직장 내 괴롭힘 등 업무 스트레스 탓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를 말한다.

일본은 과로자살도 과로사 일부로 인정하지만, 한국은 과로자살에 대한 법적 정의조차 명확하지 않다. 과로자살 역시 ‘문제 있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장시간 노동과 과로가 낳은 결과이다.

2022년 5월 1일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2022년 세계노동절 인천대회’의 모습.(인천투데이 자료사진)
2022년 5월 1일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2022년 세계노동절 인천대회’의 모습.(인천투데이 자료사진)

0.78명과 0.59명…. ‘2022년 인구동향조사 출생·사망통계(잠정, 2월22일 통계청 발표)’에 나오는 한국과 서울의 합계출산율 수치이다. 한마디로 ‘출산율 쇼크’다.

2018년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행하는 ‘산업동향&이슈’에 실린 ‘여성의 근로시간이 출산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보면, 기혼여성의 장시간 노동이 출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기혼여성의 주당 총 노동시간이 1시간 증가하면 첫아이 임신 확률이 1%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장시간 노동만 개선해도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라고 진단했다.

‘일·가정 양립지원 시스템’ 정착을 어렵게 만드는 현재와 같은 장시간 노동 관행이 유지되는 한 한국 사회에서 ‘연애하고 결혼하며 아이를 낳아 기르는’ 생애 모델 붕괴는 더욱 빨라질 것이며 대한민국 소멸을 막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한 조사를 보면, 취업자들이 희망하는 주당 노동시간은 36.7시간이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2년 전국 일-생활 균형(워라벨) 실태조사’). 윤석열 대통령의 69시간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

다가오는 5월 1일은 노동절이다. 1886년 5월1일,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였던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을 기리는 날이다. 노동절의 기원이고 죽음으로 저항했던 노동자들을 기리는 날이기도 하다.

인류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 투쟁의 역사였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19년 ‘하루 8시간, 주 최대 48시간 노동’을 규정한 제1호 협약을 채택했다.

아직도 69시간 운운하는 건 수치다. 죽어라 일하다가는 진짜 죽을 수도 있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지금 당장 응급 구조 신호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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