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동희 극작가 극단 십년후 기획실장
바람결을 따라 휘몰려 다니는 낙엽들이 가을의 끝자락을 간신히 잡고 있는 가운데 하루하루 다르게 느껴지는 기온은 곧 다가올 겨울을 예고한다. 대학입시를 준비한 청소년들은 수능이 끝나면서 한숨 돌리긴 했지만 정시를 앞두고 또 한바탕 전쟁을 벌여야할 시점이다. 그동안 애써온 준비들이 나름의 성과를 거두길 기대하는 한편으로 끝없는 경쟁에 내몰리는 모습들이 안타깝다.

지난 주말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예술교육 현장을 다녀왔다. 틀에 박힌 학교에서 벗어난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나아가 예술에 관심 있는 약간의 ‘날나리’를 기대했는데 예상보다는 점잖은 모습들이었다. 적어도 이날만큼은 좀 더 흐트러져도 괜찮으련만 오히려 예술교육이란 이름으로 또 다른 짐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연극배우를 희망한다는 친구는 최근에 연극을 보기는 고사하고 언제 공연장을 갔는지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는 친구는 요즘 무슨 책을 보느냐는 물음에 우물거렸다. 학교 밖에 나와서도 여전히 학교 울타리에 갇힌 듯해서 마음이 답답하다. 여기가 예술교육 현장이라는 게 의아하다.

하긴 학교수업 시간표에서 음악과 미술이 사라지고, 체육이 사라지는 현실이고 보면 이해를 못할 바도 아니다. 지금껏 익숙하게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을 몇 시간의 교육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나마 학교 밖의 예술교육에 참가한 것만으로도 맘이 놓인다. 이렇게라도 만나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겨우 몇 십 명의 아이들이지만 이들이 친구들에게, 친구가 또 다른 친구에게 자신이 보고 들은 걸 나누면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기대한다.

이론 중심의 수업에 가뜩이나 지쳐서 어렵게 나온 아이들에게 자칫 예술 또한 어렵고 무미건조하다는 선입견을 주지나 않을까 싶어서 궁금해 하는 것들을 얘기해보자고 말머리를 돌렸다. 첫 자리의 어색함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해보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질문하기조차 어려운 걸까, 한참을 서로 아무 말이 없다.

그러다가 불쑥 나온 질문이 ‘연극하면 돈 많이 벌어요?’다. 많이 버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는 아주 어렵다고 답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봉이 얼마냐, 돈도 못 버는데 연극은 왜 하느냐, 배우들은 어떻게 생활 하냐는 둥 봇물이 터진다. 대체로 ‘돈’과 관련한 호기심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돈으로 가늠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겨우겨우 대답을 하는 혀끝이 씁쓸하다.

이번엔 아이들에게 거꾸로 묻는다. 왜 예술 관련학과를 희망하느냐, 화려한 연예인이 되고자 하느냐고. 그리고 혹시나 공부가 싫어서, 또는 공부를 못해서 선택하는 건 아니냐고 다그쳐도 본다. 아이들이 잠시 멈칫하는 걸 보고나서 어른인양 흔해빠진 소리를 덧붙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그리고 가장 잘 하는 걸 하라’고.

목요일인 22일에 청소년들이 주인공이 되어 꾸미는 뜻 깊은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 지난 9월부터 함께 모여 준비해온 공연 ‘오리 날다’가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에서 오후 3시와 5시 두 차례 펼쳐진다. 설레기도 하지만 여전히 객석으로 눈길을 제대로 주기가 어색하고 쑥스러워 하는 친구들도 많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 막 배워서 처음으로 서는 무대인데 조금 틀리면 어떠랴.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이다. 연습 과정에서 각자의 고민을 나누고 그 내용을 대본에 담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가까운 사람들이 지지해주지 않는 게 아이들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하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살고 싶은데, 그리고 지금 하고 싶고 평생 내 걸 하면서 살고 싶은데, 어른들은 돈 먼저 벌고 나중에 하라고 한단다.

더러는 연습을 오는 것조차 숨기고 왔다고 한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응원은커녕 꾸지람을 들을 게 빤하기 때문이란다. 에휴… 딱하고도 대견하다.

무대에 오르는 아이들이 모두 연극인으로 성장하길 바라지는 않는다. 그래도 연극의 힘을 믿는다. 어른이 된 아이들이 지금을 돌아보면서 뿌듯한 미소를 짓게 되리란 걸 믿는다. 꿈을 꾸는 아이들 모두에게서 내일의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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