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 시선집 ‘나는 좌파가 아니다’ 발간

27년 동안 시집 다섯 권을 낸 시인이 있다면, 그를 부지런한 시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회원 수백 명이 속한 단체에서 대표직을 맡으며 온갖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역사와 시를 엮은 책을 여러 권 펴낸 데다 본업은 고등학교 국어교사라고 한다면, 오지랖 넓은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신현수(사진) 시인이 최근 시선집 ‘나는 좌파가 아니다’를 발간했다. 1989년 등단 후 5년마다 한 권씩 펴낸 시집 가운데 35편을 가려 묶은 것이다. 시인이 쓴 시를 읽다 보면, 그가 하고 있는 일은 물론, 그가 어떤 이들을 만나는지, 가족은 몇 명인지, 심지어 그의 고민과 외모까지도 짐작해볼 수 있다.

박두규 시인은 이번 시집 발문에서 “신현수의 시는 잘 읽혀진다. ‘솔직함’과 ‘진정성’이 있었고, ‘울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으로 해직됐다가 1994년 복직한 후 부개여고와 부평여고, 부평고를 거쳐 지금은 부광고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그의 시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엊그제는 굴비를 팔았다 / 굴비 담은 상자 밑이 빠져 / 길바닥에 떨어진 놈을 다시 주워 담으며, / 쫒겨 나온 교무실에 굴비를 들고 가 /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들께 / 굴비를 팔았다’(시 ‘굴비도 판다’ 중 일부)

‘이미혜 회장은 해직교사 시절에 만난 / 내 친구인데 / 그는 대학 다니다가 / 공장에 투신하느라 / 졸업도 못하였고 / 젊음을 바쳐서 / 다 함께 잘 사는 / 좋은 세상 만드느라 / 그 흔한 자격증 하나도 없다 / (중략) 복직하고 나서 딱 한 번 5만원인가 미혜 통장에 넣어 준 적이 있는데 / 그가 조직사건에라도 엮여 감옥에 가게 되면 / 통장에 돈 넣어준 나도 끌려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 한심한 생각을 했고’(시 ‘이미혜’ 중 일부)

시인은 머릿속에서 일어난 생각이 아닌 자신이 직접 겪고 느낀 것들을 마치 이야기하듯 시로 옮겼다. 그의 시는 우리 일상과 닮아 있다. 그는 일상을 미화하기보다 끊임없이 자책하고 반성한다. 대게 합리화하며 감추기 마련인 모습까지 여지없이 드러내는 시인의 서른다섯 개의 고백을 들으며 독자들은 동질감과 안도감을 느끼고, 어느새 시인처럼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꽤 도발적인 시집 제목도, 내막은 이렇다.

‘비 내리는 날 / 낡은 유모차에 젖은 종이 박스 두어 장 싣고 가는 / 노파를 봐도 / 이제 더 이상 가슴 아프지 않으므로 / 난 좌파가 아니다 / 네온 불 휘황한 신촌 /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위 / 온 몸을 고무로 감고 / 사람의 숲을 뚫고 천천히 헤엄쳐 가는 / 장애인을 봐도 / 이제 더 이상 가슴 저리지 않으므로 / 난 좌파가 아니다’(시 ‘난 좌파가 아니다’ 중 일부)

시인은 시집 앞머리에 ‘정리하고 보니 마치 내 삶을 총정리한 기분이다. 내가 이렇게 살아올 줄 미리 알았더라도, 나는 이렇게 살지 않았을까? 내 삶에서 큰 욕심이 없으니 살아온 내 삶에서 큰 후회는 없다. 앞으로도 내게 다가오는 삶을 피하지 않고 그냥 살아내려 한다’라고 썼다. 그의 고백과도 같은 시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 걸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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