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인천투데이ㅣ지난해 말 지인의 아이가 다니는 학원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아이는 그 학원에 다니며 운동을 좋아하게 됐고 힘들다는 내색 하나 없이 학원을 다닌다는 얘기에 기특하다 여기고 있었다.

유난히 학원 원장을 따랐던 아이는 학원이 문을 닫고 원장님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에 눈물까지 보였다고 한다. 학원 원장의 평판도 좋고 수강생이 늘고 있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폐원을 하고 원장은 인사도 없이 떠났다고 하니 괜한 의구심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학원이 문을 닫은 이유는 원장의 아동 성추행 사건 때문이었다. 수강생인 아이를 성추행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원장에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는 것과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함을 명백히 밝혔다고 한다.

수강생과 그 부모들에게 그 사실을 모두 밝힐 수는 없었기에 다시는 원장이 학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가까이하고 가르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을 다짐받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지인은 학원 원장님을 다시 볼 수 없음을 아쉬워하는 아이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고 한다. 이러한 일이 어쩌다가 한번 벌어지는 일이라면 더욱 조심하고 잘 살피면 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2020년 여성가족부가 조사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 추세와 동향 분석에 따르면 피해자의 28.2%가 13세 미만이고, 피해자 평균 연령은 14세로 2017년 14.6세에서 계속 낮아지고 있다. 아동성범죄의 경우 가해자는 가족·친척을 포함한 아는 사람이 66.4%로 가장 높았다. 

위 사건의 경우 피해 아동은 12세였고 가해자는 피해 아동이 다니고 있는 학원의 원장이었다. 통계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례이다. 이에 더해 국내 성범죄의 3년 내 재범률은 60%를 넘는다.   

재범 우려가 큰 고위험 성범죄자는 전자발찌 착용, 보호관찰 등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범죄를 예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법무부는 미성년자 교육시설 500m 이내에 재범 우려가 큰 성범죄자를 살지 못하도록 하는 일명 '한국형 제시카법'인 전자장치부착법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시작된 제시카법은 2005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일어난 아동 성폭행 살해 사건을 계기로 제정된 법으로 아동 성범죄자는 초범이라도 징역 25년 이상, 재범은 무기징역 선고를 원칙으로 하며 출소 후에도 평생 전자 위치 추적 장치를 착용하게 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30개 이상의 주에서 시행 중이며 성범죄자는 학교와 공원에서 2000피트(약 610미터) 이상 떨어져 살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거주 이전의 자유 등 헌법상 기본권을 고려해 반복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고위험 성범죄자로 그 대상을 한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거주지를 제한하는 이 법을 두고 논쟁이 일고 있다. 면적은 우리나라 면적의 1.7배에 달하지만 인구밀도는 매우 낮은 미국 플로리다의 제시카법은 우리나라의 현실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와 유치원의 수는 2만 곳이 넘는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교육 시설이 밀집해 있어 반경 500m 내에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제한하면 이들은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겨야 한다. 교육 환경이 가뜩이나 부실한 수도권 이외 지역은 성범죄자가 거주할 것이라는 편견이 더해져 더욱 거주를 기피하는 지역이 될 것이며 이는 또 다른 차별을 불러올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미 성범죄로 법적 처벌을 받고 사회에 나온 이가 헌법상의 권리인 거주·이전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이중 처벌을 받는 것이라며 위헌 여부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성범죄자가 산다는 것으로 인해 차별과 기피의 대상이 되는 지역으로 낙인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위험성 성범죄자들을 막기 위한 조치로 제시카법이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겠지만 성범죄 재발 위험이 높은 이들은 사회에 나와선 안 되기에 오히려 플로리다처럼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재범률을 낮출 수 있도록 치료와 감호가 우선시 돼야 하며 형기 내에 치료가 안 되면 치료감호 기간을 늘려 격리하는 것이 더 나은 조치라 생각한다.  

2월 22일은 아동 성폭력 추방의 날이다. '아동 성폭력 추방의 날'은 지난 2006년, 용산 아동 성폭력 살해 사건 이후 아동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고 해결 의지를 다지기 위해 2007년 여성가족부에서 지정한 날이다.

법과 제도를 정비함과 동시에 아이들이 성폭력 상황을 인식하고 주변에 알릴 수 있도록 교육을 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불평등한 사회에서, 거주하는 지역으로 인해 불평등이 더해지지 않게 좀 더 고민하는 법무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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