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인천청년광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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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얼마 전 사실혼 동성부부의 피부양자 자격이 인정되는 의미있는 판결이 나왔다.

5년차 사실혼 동성부부가 2022년 5월, 건강보험공단에 ‘직장 가입자인 상대 배우자의 피부양자로 동성 배우자가 등록할 수 있는지’ 문의했고, 공단은 ‘사실혼 관계면 가능하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에 피부양자로 등록이 됐다. 하지만, 언론으로 이 사실이 알려지자 공단은 ‘착오 처리’였다며 피부양자 등록을 취소했고, 당사자는 지역가입자로 변경한 것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선 ‘혼인은 남녀의 결합’이라는 이유로 둘의 사실혼 관계를 인정할 수 없고, 피부양자 자격 또한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은 달랐다. 혼인은 남녀 간의 결합이기 때문에 사실혼은 인정되지 않지만, 함께 생활을 하고있는 ‘동성결합’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국가인권위원회법 등 사법적 관계에서 성적 지향이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면서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한 공법적 영역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할 것”이라 판시했다.

이 판결이 있기 훨씬 전부터 한국 사회는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지난해 4월, 국가인권위원회도 법적인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동반자’로 인정하는 내용의 ‘생활동반자법’을 만들라고 국회의장에게 권고한 바 있다.

동성 배우자의 법적 지위가 인정되지 않으면 배우자의 사망 신고를 하기 어렵고, 유산을 상속받을 수도 없으며 배우자와 같이 살던 주택일지라도 법적으로 아무 권리가 없다.

배우자가 아파 수술이나 입원을 할 때에도 보호자로 인정받을 수 없어 동의서에 서명할 수 없고, 각종 주거 복지 정책과 세제 혜택 등 여러 복지제도에서 배제됐다. 동성 간의 ‘사랑’을 이유로 사는 동안, 그리고 죽어서까지 권리를 빼앗기는 것이다.

주변의 여러 성 소수자 친구들이 떠올랐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있던 ‘이성애’만을 사랑이라 규정하는 세상에 속하지 못해 자신을 미워하고, 또 사람에게 스스로 소외되기를 선택했던 친구가 떠올랐다.

‘이런 나라도 받아줄 거 같은 사람들’을 만났음에도 어렵게 자신의 성적지향을 밝히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던 친구도 떠올랐다.

우리를 가두는 세상의 인식은 너무 많다. 사람의 특성을 성별로만 나눠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을 강요하고, 이성 간의 연애만 ‘정상’으로 생각하며, 결혼과 출산은 모든 인간이 반드시 거쳐야하는 과정처럼 이야기한다.

세상이 정해놓은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유별나거나 무언가 결핍이 있는 사람처럼 취급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조금씩 그 길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있다. 유별나거나 결핍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는 우리가 살고 싶은 모습으로 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개개인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배제나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나는 재판부의 이번 판결이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정한 ‘이성 결혼’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난 동성결합(동성결혼이면 더 좋았겠지만)이여도 그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소송 당사자의 배우자는 승소 직 후, “이 날 소송으로 얻어낸 권리는 혼인의 1000가지 권리 중 하나일 뿐”이라며 “필요할 때마다 1000번을 싸울 순 없다. 그래서 우리에겐 동성혼이 필요하고 그게 우리가 갈 길”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1000개 중 하나의 권리를 인정받은 작은 승리일지라도, 우리 사회의 유의미한 변화에 응원과 지지를 보내며, 사랑을 무기로 이 변화를 만들어 온 사람들에게 무한한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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