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과학이야기 53. 비만 ②

2004년 6월 맥도날드는 ‘활기찬 생활!(Go Active!)’이라는 선전구호를 만들고 새로운 메뉴를 선보였다.

‘활기찬 생활!’ 세트는 샐러드, 물 한 병, 그리고 하루 동안 걸어서 이동한 거리를 알려주는 만보기로 구성됐다. 또 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소개한 책자도 함께 제공했다. 햄버거, 감자튀김, 탄산음료 위주인 기존 메뉴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것이었다.

‘패스트푸드 = 정크푸드’, ‘맥도날드 음식은 비만의 주범’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케팅 수단이라는 것을 누구나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커다란 전제가 깔려 있다. 바로 비만은 음식 탓이 아니라 ‘당신의 운동 부족’ 때문이라는 것이다.

맥도날드의 과거로 돌아가 보자. 1960년대 미국의 맥도날드 홍보 전략가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왜 손님들은 적은 양의 감자튀김 이외에 다른 것을 주문하지 않을까. 연구 끝에 1980년대 새로운 전략을 만들었다. 아주 간단하다. 단지 더 많은 양을 제공하는 것이다.

특대 사이즈를 메뉴에 추가하고, 가격은 조금 올렸다. 소비자는 싼값에 훨씬 더 많은 양을 먹을 수 있으니 경제적이고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고 맥도날드가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다. 감자튀김이나 탄산음료의 가격에서 실제 음식이 차지하는 비용은 매우 낮다. (마케팅 비용, 인건비, 매장 운영비 등이 가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많이 주면 많이 먹는다’는 인간심리를 이용한 마케팅을 펼친 결과, 초기 성인용 햄버거는 이제 어린이용으로 제공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운동을 권하는 맥도날드’와 ‘많이 먹을 것을 강요하는 맥도날드’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하지만 두 개의 전략은 대중에게 완전히 ‘먹혔다’. 우리는 기존에 먹던 대로 먹더라도, 운동을 하면 살을 뺄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 몸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구상의 모든 인류를 충분히 먹여 살리고 남을 정도로 농업 생산량이 늘어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인간의 몸은 오랜 기간, 영양소 결핍에 대항하도록 발달해왔다. “수확이 적은 시기에 에너지를 저장하는 기능은 뛰어나지만, 풍족한 기간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기능은 좋지 않다. 일단 몸에 지방이 들어오면, 그것을 저장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다. 우리가 매일 아주 조금만 더 기름지게 먹거나 조금만 덜 걸으면, 몇 해가 지나지 않아 군살이 붙어서 빠지지 않게 된다”(‘강요된 비만’, 프란시스 들프슈 외 지음)

물론 활동을 하면 과체중과 그 부작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하루 30분 정도의 운동으로는 체내 지방을 소모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서는 최소 90분의 운동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일을 한 대가로, 퇴근 후 온 몸이 지칠 때까지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비만은 한 개인이 책임져야할 문제라는 인식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비만은 폭식과 게으름 때문이 아니다.

걷기 위험한 도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에 부적합한 환경, 더 많이 일하도록 강요하는 직장, 원재료 생산부터 가공까지 모두를 손아귀에 넣은 다국적 기업, 손쉽게 살 수 있는 가공식품, 나날이 치솟는 과일과 채소 가격, 늘어나는 육류 소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고칼로리 식품 광고, 가공식품의 위험성에 대한 정보 부족 등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장벽이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맥도날드 사례에서 보듯, 대기업과 다국적 기업은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우리를 공략한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우리는, 어느새 그들이 원하는 대로 먹고, 생각하게 된다. 이 거대한 장벽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다음 과학이야기에서 생각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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