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열 전국금속노동조합 감사위원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사회의 노동조합운동을 위기라고 진단하고 있다. 위기의 원인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90년대 대공장 노조가 중심이 된 민주노총 출범 이후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민주노총 산하 노조들은 사실상 사회개혁 투쟁보다는 임금과 성과 배분문제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한편으로, 국가의 기업정책은 재벌과 대기업 위주의 정책으로 이어져 결국 중소기업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노조도 기업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중소규모의 노조는 기업의 경쟁력이라는 미명아래 점차 힘을 잃어가는 반면, 대공장 노조의 힘은 기업의 성장만큼 커졌다. 이로 인해 대공장의 임금과 복지 수준은 중소사업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격차를 보이며 새로운 양극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회 양극화도 심각한데 노동의 양극화는 노동운동 위기를 더욱 빠르게 불러오고 있다.

이러한 대공장 중심의 노동운동은 점차 시민사회의 지지를 잃고 이제는 노동운동의 고립을 예고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투쟁 당시 필자가 평택에서 집회를 마무리하고 몇몇 지인들과 뒤풀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 자리 뒷좌석에서 평택시민들이 술을 마시며 나누는 대화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동정의 가치가 없다. 잘나갈 때 폼 잡고 으스대던 거 생각하면 동정이 안 간다’는 요지의 말을 거침없이 했다.

이 뿐만 아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현대차와 기아차노조 조합원들이 올해 임금협상에서 성과급으로 회사와 합의한 금액은 전체 평균 2000만원이 넘는다. 이 액수는 남동공단의 중소사업장 노동자의 연봉과 맞먹는다. 물론 기업이 창출한 이윤이 노동자들의 노동의 대가라는 점에서 분배를 받아야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불안한 고용에 힘들어하는 중소사업장의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숨을 쉬기 마련이다.

시민사회의 반응도 비슷하다. 이제는 대공장 노조가 파업을 할라치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고, 이와 같은 방식의 노동운동은 대공장 노조만의 문제로 치부해버리게 된다. 한술 더 떠서 정부와 보수 언론들은 아예 대놓고 비판한다. “귀족 노동자”, “고액 연봉자”, “이기주의 집단” 등으로 규정하며 대공장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는 파업에 찬물을 끼얹고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도록 떠들어댄다.

‘대공장 노조원들이 고액의 연봉을 받는다’는 것은 장시간 노동을 감안하지 않은 비난이지만, 왜 이렇게 비난의 대상이 됐는지 한번쯤 생각해야할 문제다. 문제의 근원이 정부의 재벌위주 정책에 기인하고 있음에도 그 책임을 대공장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는 의도임이 분명하지만, 사회적으로 심각한 노동자들의 양극화를 가벼이 봐서는 안 된다.

노동운동 위기의 근본적인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노동자들의 연대의식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노동운동 필요

또한 지역의 시민들과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외면당한다면 결국 노동운동은 이른바 ‘그들만의 운동’이 되고 말 것이다.

공장의 담을 넘어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늦었지만 시작해야한다. 매해 임금과 단체협약 교섭에서 회사 측에 사회공헌기금을 요구하지만, 정작 노조는 얼마나 시민사회와 지역에 공헌했는가?

물론 노조가 기업처럼 자금을 가지고 있지 못해 돈으로 기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노조는 조직적으로 훈련된 조합원이 있고,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러한 역량을 기반으로 기업의 공헌기금과 조합원 스스로의 참여를 유도해 기금을 만들어 소외받고 있는 지역 시민들에게 돌려줘야한다.

이를 노조가 단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많은 단체와 연대해 다양한 기부와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것이 노조가 공장의 담을 넘어 국민과 함께하는 운동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대공장 노조 하나가 아니라 인천지역에 조직된 노동자 4만여명이 함께 하고, 지역에서 다양한 재능과 능력을 가진 단체의 힘이 합쳐진다면 노동운동은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럴 때 대공장 노조가 더 이상 조직 이기주의가 아니라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노조로 거듭나고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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