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병구 인천교육연구소장ㆍ인천해양과학고 교사
부평이 부천 신도시나 서울 강남과 부쩍 가까워졌다. 강남까지 54분, 부천 상동이나 중동까지는 10여분 내에 갈 수 있다. 지하철 7호선을 통해서.

길은 물리적으로만 보면 쌍방향으로 균형 있게 흐른다. 길에 닿아있는 지점들은 모두 균등하게 서로에게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보면 양상이 다르다. 로마의 길은 지중해 연안의 문명을 끌어당겼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면서 주변국들은 제국 로마에 복속되었다. 중국도 진시황이 도로를 정비하면서 하나의 중국(China)으로 엮였다.

케이티엑스(KTX)가 달리는 요즘 길도 다르지 않다. 길이야 서울이든 천안이든 가리지 않고 고루 가닿는다. 하지만 학자들의 초기 진단과 달리 수도권 분산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대신 ‘빨대효과’를 염려하게 되었다. 서울의 문화적 무게가 천안의 문화를 빨아들이는 역삼투 현상이 케이티엑스 속도로 진행 중이다.

강남은 우리 사회의 문화 용어다. 특정 주소가 아닌 지 오래다. 강남은 자본으로 다른 지역을 지배하고 문화로 압도한다. 사실, 우리 사회는 강남에 닿으려는 욕망으로 작동해 왔다. 특히, 사교육 광풍의 진원지로서 강남은 욕망의 사다리 정점을 찍는다.

인천에서 서울 목동을 거쳐 강남으로 이주하는 현대판 맹모삼천은 강남의 흡인력을 과시한다. 강남으로 가는 ‘교육이주로’는 없는 자들에게는 부러움과 질시로 버무려진 올라탈 수 없는 ‘신분상승로’가 되었다. ‘대치동맘’이 되어 자녀를 키울 수 없는 이들은 케이티엑스에 아이들을 태운다. 주말 특별과외로라도 한을 풀려는 이들에게 강남은 케이티엑스를 빨대 삼아 지방의 사교육 수요를 빨아들인다.

사교육 일번지 서울로 진입할 수 없는 이들은 이번지, 삼번지를 찾는다. 부천 상동은 이미 부평 교육열의 일부를 잠식하고 있는 사교육 밀집지역이다. 서울에 근접할수록 집값이 뛰는 이치에 따라 상동의 사교육 시장도 서울을 바라보며 뛰고 있다. 아이들은 낮에는 인천의 학교에 있다가 밤에는 상동의 학원으로 넘어간다.

지하철 7호선이 더 큰 빨대가 될 수 있다. 하루에 두 도시를 넘나드는 삶이 지하로 이어져 강남까지 연장된다면 아이들은 어둠과 벗하며 땅 속에서 나이 먹을 것이다. ‘지하철 2호선’은 수험생들의 선망을 은유하는 용어다. 유수한 대학을 망라하는 노선이 만들어낸 말이다. 앞으로 ‘지하철 7호선’ 타고 고생해 ‘2호선’으로 갈아타자는 말이 부평 학생들의 은유가 되는 건 아닐까?

비단 사교육뿐만 아니다. 지하철 7호선은 여러 영역에서 빨대가 될 수 있다. 부평구청역이나 굴포천역, 삼산체육관역을 떠올려 보라.

다른 지역민들을 끌어들일 유인 요소가 취약하다. 별 매력이 없는 지상 도시는 자신의 지하가 상동이나 강남에 포섭된들 지켜볼 수밖에 없다. 교통 접근성은 양날의 칼이다. 편리함에는 대가가 따른다. 부평역 상권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시사해 준다. 부평이 상동이나 중동, 멀리 강남 권역과 싸운다면 어떤 영역에서 강점을 발휘할까? 지하철 7호선은 부평의 미래 구상에 도전장을 던진다.

로마는 그리스를 비롯한 여러 문화의 누적이었다. 서로 잡아먹을 듯 로마와 싸웠던 기독교도 결국 어우러졌다. 유럽 문화의 근간이 된 로마는 융합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그런데 충돌 없는 융합은 없다. 기독교는 로마와 대립하며 강화해낸 자기중심성으로 유럽의 정신이 되었다. 신작로를 반대했던 유생들처럼 살 수 없는 시대지만 길이 뚫리면 약한 자기중심성은 와해된다.

부평과 부천, 강남 중 자기중심성이 약한 지역은 어디일까? 자본과 문화력으로 경쟁하면 답은 뻔하다. 이미 형성된 주류문화가 판치는 경기장은 부평에 불리하다. 그 경기장에서 내려서 다른 경기장으로 판을 옮겨야한다. 돈 아닌 사람, 주류들의 문화가 아닌 비주류의 문화에서 길을 찾아야한다.

부평 문화가 흐르는 길은 지하철 7호선과 다른 방향으로 향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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