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장 윤나현

드라마 ‘더글로리’가 연일 화제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지난해 12월 말 넷플릭스가 공개한 후 점유율과 화제성 면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굳이 이런 기록이 아니어도 드라마의 흥행은 체감된다. “정주행”, “과몰입 유발”, “시청 예정” 같은 주변의 대화가 대표적이다. SNS상 각종 시청 후기와 ‘밈(meme, 요약설명)’도 드라마의 높은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윤나현 성평등 교육활동가
윤나현 성평등 교육활동가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 무심코 보기 시작했다가 밤을 꼴딱 새웠다. ‘더글로리’는 고등학교 시절, 끔찍한 괴롭힘에 시달렸던 동은이가 많은 시간이 흐른 후, 가해자들을 응징하기 위해 치밀한 복수를 감행하는 이야기다. 공개된 시즌1의 경우 동은이 왜 복수를 할 수밖에 없는지, 어떻게 복수를 준비해왔는지 소개한다.

드라마는 참담했다. 특히 초반에 집중되어있는 폭력 장면은 너무 끔찍했다. 설정임에도 잔인한 폭력을 목격하는 일은 시청 중단을 고려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 중 하나인 학교에서 반복되는 언어폭력과 신체 폭력, 거기에 성희롱, 성추행이 더해져 엄청난 모욕감과 분노를 느꼈다.

드라마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삼가려 한다. 다만 지금 ‘더글로리’가 던지는 질문과 의미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학교 폭력이라는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의 문제, 누군가는 매일 겪고 있고 그로 인해 삶을 던지기도 하는 이러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현재 학교는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학교 폭력 예방교육 역시 마찬가지이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학교폭력의 예방을 위한 학생들에 대한 교육을 학기별로 1회 이상 실시하고 있으며 이는 물론 폭력을 방지,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우리는 뉴스에서 믿기 어려운 사건들을 꾸준히 접하고 있다. 몇 해째 연예계, 스포츠계 유명인들의 학교 폭력 가해 사실이 터져 나왔던 것을 기억하리라. 필자가 충격받았던 ‘더글로리’의 폭력 장면 역시 실화에 기반했다는 사실 또한 알려졌다. 현실은 어쩌면 드라마보다 더 끔찍한 것이다.

그간 학교 폭력은 주로 ‘무서운 10대’ 또는 ‘집단 따돌림’, ‘인성 논란’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아직 미성년인 10대’가 얼마나 잔혹한지 다루거나 ‘집단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가해자에겐 ‘인성을 덜 갖춘 자’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서 인성 교육이 강조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분석과 접근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잔혹성과 집단성, 인성 교육의 부재는 학교 폭력의 특성이지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폭력이 왜 발생하고, 반복되는지를 사회적 측면에서 면밀하게 살피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글로리’는 1화에 이미 그 답을 내놓고 있다.

자신을 반복적으로 집요하게 괴롭히는 가해자들에게 동은이는 질문을 한다. “도대체 왜 자신을 괴롭히냐”는 것이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해자 연진이는 대답한다. “넌 그래도 아무 일이 없으니까”라고. “학교도, 경찰도, 심지어 네 부모도 널 보호하지 않는다”라며 “그걸 다섯 글자로 ‘사회적 약자'라고 말한다”며 보란 듯이 동은이를 비웃는다.

사실 이 대답은 필자의 예상을 비껴간 것이었다. 필자는 연진이가 ‘친구 사이에 장난 좀 친 것’, ‘재미있으니까’ 이라거나 ‘네 반응이 궁금해서’, ‘네가 짜증나게 하니까’라고 답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해자들은 늘 ‘장난’과 ‘재미’, ‘호기심’이라는 핑계를 대거나, 피해자가 폭력을 불러일으킬 만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 전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력은 결코 강한 자를 향하지 않는다. 가해자들은 일관되게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힌다. 흔히 학교 폭력에서 쓰이는 “재미로”, “장난이었다”는 변명은 약한 자에게서 착취하는 ‘재미’와 ‘장난’이다. 약한 사람들만이 ‘궁금해서’ 괴롭힐 수 있는 대상, ‘짜증’을 실행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폭력은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는 사실, 권력관계에서 약한 자를 향해 벌어진다는 사실을 ‘더글로리’는 가해자의 입으로 말한다. 힘의 차이를 견제할 시스템이 부재하면 폭력은 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통해 더욱 공고해진다. 바로 ‘사회적 약자’를 향해서 말이다.

그러하기에 동은이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사회, 무너진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삶을 갈아 넣어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복수를 꿈꾼다. 가족도 학교도, 사회도 지켜주지 않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자신뿐이기에 복수에 대한 희망만이 동은이 가 삶을 버티는 힘이다. 그러하기에 필자는 안타까움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복수, ‘더글로리’시즌2, 동은이의 본격적인 복수에 담긴 메시지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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