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섭 인천문화재단 평화교류사업단 과장

정민섭 인천문화재단 평화교류사업단 과장
정민섭 인천문화재단 평화교류사업단 과장

인천투데이|118년 전 인천 월미도 앞바다에선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제물포해전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조선은 원치 않는 전쟁에 휘말린다. 또 한국전쟁 당시에는 인천상륙작전이 벌어져 수많은 인천시민이 피해를 입었다.

이밖에도 강화와 교동에선 지방 좌익과 우익 유격대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도 있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이러한 상처들은 제대로 치유되지 못했다.

월미도의 원주민들은 상륙작전으로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받았음에도 보상은커녕 섬에 들어선 군부대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또 좌우익에 의해 가해진 민간인 학살 피해자와 유족들은 사건 관련 사과를 받지도 또 용서를 하지도 못한 채 숨죽인 채 지내왔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1999년~2013년 사이에 인천의 대표적 접경지역인 서해 5도에서 남과 북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는 해전이 2차례 있었으며 2010년에는 북측의 포격으로 남측의 군인 2명이 전사하고 민간인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2013년엔 천안함이 피격 침몰돼 젊은 장병 46명이 전사했다. 이처럼 인천은 그동안 전쟁과 폭력을 경험한 공간이자 아직까지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곳이다.

2023년은 한국전쟁이 정전한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인천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쟁, 민간인에 대한 폭력과 학살, 남북의 끊임없는 대립과 충돌을 경험했고 지금도 폭력의 가능성 안에 노출돼 있다.

물론 이러한 갈등과 폭력 상태로부터 평화를 지향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1~2013년 서해 5도 지역에서 예술인들은 분단의 모순과 폭력을 지양하고 평화의 가치를 추구하는 평화미술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또 2018~2021년 인천의 서해접경지역에서 평화예술 창작활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인천은 평화로 명확한 지향점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 승리의 발판을 만든 영광스러운 작전으로 기념되고 있다. 또 남북이 충돌했던 바다에서도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자 하는 실효성 있는 방안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평화를 외쳤던 예술창작은 후퇴했다. 어떻게 해야 인천은 평화로운 도시로 전환될 수 있을까. 이는 제주의 사례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2005년 제주도는 4.3이라는 비극적 역사를 극복하고 상생‧화합의 정신으로 21세기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를 지향하고자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됐다. 이후 제주는 199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4.3미술제를 비롯해 제주4.3평화재단의 각종 평화관련 프로그램 등이 활성화됐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며 국가가 주도한 폭력으로 발생한 어두운 역사를 성찰하고 또 어떻게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지에 대한 고민을 대중적으로 공유했다. 이러한 노력은 지난 2019년 동아시아평화예술프로젝트(EAPAP)라는 성과로 나타났다.

당시 동아시아평화예술프로젝트조직위원회는 제주4.3 71주년을 맞아 ‘2019 EAPAP: 섬의 노래’라는 국제 예술전시회를 개최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제주를 비롯해 일본, 대만, 홍콩, 베트남 등의 예술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 중 제주와 일본의 오키나와, 대만의 작가들은 비슷한 역사적인 경험을 공유했다. 오키나와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옥쇄(玉碎)로 수많은 민간인이 죽었고 대만의 경우 국민당군에 의해 수많은 대만 원주민들이 학살당하는 2.28사건을 겪었다.

이렇듯 이 세 지역은 국가의 폭력에 의한 희생과 참혹했던 학살의 경험을 공유했고 이를 예술로 승화해 평화를 지향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다시 인천으로 눈을 돌려 보자. 인천은 제주와 같이 대규모의 국가 폭력과 그에 따른 학살을 겪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천은 전장의 주요한 무대로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이에 대한 사과와 용서 그리고 화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주와 닮아 있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인천에서도 평화예술을 바탕으로 한 평화도시의 성격을 도출할 수 있다.

어쩌면 정전 70년이 되는 올해가 그 계기가 될 수 있다. 인천이 겪었던 전쟁과 폭력에 대한 성찰과 평화의 탐색으로, 그리고 20세기 전쟁과 폭력을 경험한 동아시아 도시 간의 예술적 교류와 연대를 지속할 수 있다면 인천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대표하는 도시로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평화를 향한 예술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꾸준히 평화예술의 지평(地平)을 확장하고 평화를 향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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