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인천투데이|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참사가 일어났다. 첫 뉴스를 접했을 때만 해도 이토록 어처구니없이 158명이 목숨을 잃는 큰 참사가 되리라 짐작도 하지 못했다. 이후 친구 둘을 참사로 잃고 힘들어하던 부상자가 세상을 떠나 참사 희생자는 159명이 됐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정부 윗선의 책임을 규명하기는커녕 경찰과 용산구청, 소방공무원 등 실무자 위주로 수사를 벌였고, 이상민 행안부장관을 포함한 어떠한 고위 공직자도 책임을 지지 않는 수사결과를 내놓았다.

이에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정조사를 시작했고,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는 55일 간의 활동을 마무리하며 결과보고서를 여당을 제외하고 야당의 단독 의결로 지난 17일 채택했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등을 위증 혐의로 고발하기로 했다.

2월 5일은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지 100일이 되는 날이다. 시민대책회의는 국정조사 이후 대응 방향을 공론화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유가족 지원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검과 특별법 제정 등의 후속 조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1월 30일부터 2월 5일까지를 10.29 이태원 참사 집중 추모기간으로 선포하고 시민들이 추모에 함께 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 중이며, 집중 특검과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과 설을 맞아 귀향하는 시민들에게 선전전도 준비하고 있다.

인천에서도 1월 19일부터 격주로 추모의 자리를 재개하고 특검 요구와 특별법 제정 등을 위한 서명운동과 함께 추모 현수막을 게시하려고 한다.

지난 7일 녹사평역에 마련한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 지킴이 활동에 참여했다. 시민분향소는 희생자 유가족들이 정부에 요청한 추모공간과 유가족 소통공간 설치가 지지부진해 만든 임시분향소이며 모진 바람과 강추위에 떨며 유가족들과 시민자원활동가들이 지키고 있다.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헌화할 꽃을 나눠주고 있는데 한 여성이 울먹이는 얼굴로 다가왔다. 친구의 부음을 듣고 설마하며 찾아온 것이다. 그의 영정이 안치된 위치를 물었고, 영정사진을 발견하고 그 앞에서 한참을 울며 서 있었다. 성인이 돼 가끔 안부를 묻는 친구이기에 이런 죽음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으리라.

10.29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 159명 중 102명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가히 충격이다. 1991년 방글라데시에서 있었던 사이클론의 피해자 14만명 중 90%가 여성이었으며 2004년 동아시아 쓰나미 희생자의 64%가 여성이었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그에 따른 피해는 결코 평등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수치이다. 인파가 몰려들면서 강한 압력이 발생하는 끼임 사고는 체구와 폐활량이 상대적으로 작은 여성이나 어린이가 더 위험하며 재난이 발생했을 때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의 피해는 더 크다.

이태원 참사를 젠더 관점으로 바라보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하는 이유다. 일본은 2005년 국가방재기본계획에 성인지 관점을 도입했고, 2013년 일본의 지방자치단체는 재난 예방과 대응, 복구 각 단계에서 요구되는 성인지적 재난대응 7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도 재난과 안전사고 정책에 성인지 관점을 도입하고 성별분리통계를 의무화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강화해도 모자를 판에 성평등정책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폐지가 담겨 있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상정됐고 여야가 서로 이견만을 확인한 상태임에도 지방자치단체는 하나둘씩 행정조직에서 ‘여성’을 지우고 있다.

경상남도와 대구시는 양성평등기금을 0원으로 만들었고, 강릉시와 속초시는 여성청소년가족과와 여성가족과를 인구가족과와 가족지원과로 조직을 개편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올해부터 시행할 ‘양성평등정책’에서 ‘여성폭력’이라는 용어를 삭제하고, 정책용어로 수십 년간 사용하던 ‘여성폭력’, ‘젠더폭력’이라는 용어를 모두 ‘폭력’으로 일괄 변경했고, ‘성평등’을 ‘양성평등’으로 변경했다.

양성평등은 성을 남자와 여자로만 구분하는 시선이기에 성적 다양성을 배제하고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 의식을 담고 있다. 이는 양성이 아닌 이들은 정책의 범위 밖에 머물게 돼 차별을 더욱 공고히 하며 이태원 참사와 같은 재난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재난과 안전 관리 정책을 세우는데 있어 성인지적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여성 피해가 컸던 것을 두고 그들이 술을 마셔서라거나 방탕해서라고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2차 가해가 난무하다. 축제를 즐기는 일에 여자와 남자의 구별이 있을 수 없으며, 여자들이 더 많이 간 것도 옷을 벗은 것도 아니다.

분장과 코스튬이 나체 활보와 성적 문란으로 와전되는 것은 퀴어문화축제에서도 계속됐으며 이는 차별과 혐오를 바탕에 두고 있다. ‘여자가 어딜 밤늦게 밖을 쏘다니냐’는 말은 예부터 이어온 여성 억압이며 ‘여자가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짧은 옷을 입어서’ 등의 언사는 여성이 성범죄를 당했을 때 어김없이 반복하는 레퍼토리다.

성범죄를 당한 것도 참사에 목숨을 잃은 것도 모두 이들이 밤에 술 마시고 짧은 옷을 입었기 때문이 아니다. 목숨은 차별없이 모두 소중하다. 놀다 죽든 일하다 죽든 모두 억울한 희생이기에 목숨의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

사람 10만명이 몰려들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턱없이 부족한 수의 경찰을 배치했고 참사가 있기 두 시간 전부터 경찰 출동을 요청하는 신고가 빗발쳤지만, 경찰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막을 수 있는 재난을 막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국가에 있지 그곳에 갔던 희생자들에게 있지 않다. 재난을 막지 못한 국가는 진실을 규명하고 더 이상 2차 가해가 일어나지 않게 철저히 책임을 묻는 것으로 이 참사를 애도해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구조적 성차별이 여전히 존재함을 인정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애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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