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주 인천여성회 정책국장
주말, 뜻밖의 부고를 들었다. 장애인여성 김주영(뇌병변1급ㆍ34)씨가 화재사고로 숨졌다는 소식이었다.

26일 새벽 자택인 서울 행당동 상가건물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고, 119에 신고했지만, 소방차가 도착했을 때 이미 그는 질식으로 숨진 상태였다고 한다.

물론 이전에 개인적으로 알던 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삼십대 중반, 홀로 살던 한 여성의 죽음은 10년 넘게 혼자 살고 있는 내게 전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원인모를 화재가 발생했을 때 그의 곁에 누군가 있었다면, 쉽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그를 도울 누군가 있었다면, 이런 끔찍한 불행은 없었을 텐데.

특히, 김주영씨는 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해 활동하던 장애인운동 활동가였다. 25세에 부모의 품을 떠나 자립한 그는 다른 장애인의 자립을 돕기 위해 중증장애인들에게 국어ㆍ수학ㆍ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야학교사 활동을 해왔고, 2009년부터는 성동구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자립을 원하는 중증장애인을 상담해주는 일도 했다.

그는 장애인운동 활동가로서 이 정부 들어서 대폭 축소된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의 확대를 요구해왔다. 특히 홀로 사는 장애인에게 24시간 활동보조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전 주장이었다.

그의 죽음은 그의 주장이 얼마나 정당하고 절박한 요구였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그러나 이미 그는 이 세상에 없다. 당연하고 상식적인 요구조차 죽음으로 보여줘야만 정당함이 드러나는 것인가? 더구나 이 죽음 앞에서도 이 나라는, 이 사회는, 장애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란 냉혹한 현실이 절망스럽다.

그의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다. 장애인 상담사 등으로 일하며 월급 100만원을 받았지만, 추운 집에서 생활하며 얻은 폐렴이 심해져 지난 8월 그마저 그만둬야했다.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으려 했지만, 벌이가 있는 부모가 있다는 이유로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가 국가 지원을 받을 수 없게 했던 부모의 벌이는 그의 어머니가 식당 종업원으로 일해 받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장애인으로 이 나라에서 살아야했던 그의 삶이었다.

홀로 살던 한 삼십대 여성의 죽음 앞에서, 안타까움을 넘어 두려움을 느낀다. 돈 없는 자, 권력 없는 자가 홀로 산다는 것은 말 그대로 죽음의 한복판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세상은 그런 여자에게 하등 관심이 없다.

김주영씨가 사고를 당하기 바로 전 주 주말에 인천영상위원회 10월의 디렉터스뷰(격월로 감독을 초대해 영화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상영회)에서 변영주 감독의 ‘화차’를 상영했다.

올해 초 개봉관에서 본 영화였지만 다시 보았다. 영화를 보고 변영주 감독과 대화를 나누면서, 다시 한 번 절망했고, 공포에 몸을 떨었다.

이 사회는 아무런 힘도 권력도 없는 여자 ‘따위’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어느 순간 그 여자가 사라진들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사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옛 속담은 말 그대로 옛말이 되어 버렸다. 아니, 돈 없고 권력 없는 자는 이미 사람이 아니다.

장애인여성 김주영씨의 생전 요구는 이 사회에서 ‘사람이 아닌 자’의 공허한 외침이었다. 활동보조서비스를 확대하라는 요구는 어쩌면 ‘홀로 사는 장애인도 사람’이라는 외침에 다름 아니었다.

돈과 권력의 유무가 사람의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스러져야 사람 아닌 자들이 사람임을 인정받게 될까.

30일이 그의 장례식 날이다. 직접 알던 사이는 아니었으나 그에게 어떻게든 ‘남의 일’ 같지 않았던 내 마음을 전해야겠다. 그것이 이 사회에서는 사람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람다운’ 도리라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