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콘서트] ‘사기’ 완역한 김원중 교수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이사장 신현수)에서 ‘밥이 되고 꿈이 되는 인문학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열린 다섯 번째 강좌에선 우리나라 최초로 ‘사기’를 완역한 김원중(사진) 건양대학교 교수가 강사로 나서, 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강의 내용을 요약했다.

궁형의 상처를 품고 써낸 책 ‘사기’

▲ 김원중 교수
저는 16년에 걸쳐 사기를 완역했습니다. 손자병법ㆍ논어 등 지금까지 책 30여권을 냈지만, 가장 열정을 갖고 쓴 책이 ‘사기열전’입니다. 오늘은 ‘사기열전’에 나오는 인물을 중심으로, 지금으로부터 2000여년 전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비교해보려고 합니다.

산고망원(山高望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산이 높으면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이죠.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수준이 결국 그 사람의 수준이 됩니다. 또, 한 사람이 가진 역량은 바로 그 사람이 서 있는 위치가 말해줍니다. 사기에 나오는 인물 중에는 낮은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본 이가 있는가 하면, 높은 산 위에서 세상을 조망하며 시대를 통찰하는 지혜를 지닌 이도 있습니다.

사마천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사마천은 아버지에 이어 사관(역사 기록을 담당하던 관리)이 됐습니다. 어느 날 장수 이능이 흉노족과의 전투에서 패배해 포로가 됐습니다. 다른 신하들은 이능의 3족을 멸해야 한다고 했지만, 사마천은 그를 두둔했습니다. 황제인 한무제는 사마천을 괘씸히 여겨 불경죄로 사형에 처합니다.

하지만 막상 생각을 해보니, 아버지 대부터 역사서를 집필하고 있던 사마천을 죽이기는 아까웠죠. 그래서 한무제는 그에게 많은 양의 벌금을 내지 못하면 궁형에 처할 것을 명합니다. 사마천은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궁형에 처해집니다. 궁형이란 남성의 생식기를 잘라버리는 형벌로, 사형에 버금가는 무거운 형벌이죠.

이후 사마천은 이런 말을 합니다. ‘어떤 이의 죽음은 기러기 깃털보다 가볍고, 어떤 이의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다. 내가 비록 소 아홉 마리 가운데 터럭 하나에 불과한 존재일지라도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면 내 삶은 태산보다 무거운 삶이 될 것이다’

사마천은 자신의 삶은 욕되지만 반드시 책을 써서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겠다고 다짐합니다. 결국 20여년에 걸쳐 사기 130여편을 완성했을 때, 그의 나이 57세였습니다. 그는 몇 년 후 세상을 떴습니다.

사기는 궁형이라는 큰 벌을 받은 상처를 가슴에 새기고 쓴 책입니다. 말하자면 치욕을 승화한 것이죠. 그래서 저는 사기를 관통하는 큰 주제는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마천은 비극 속에서 희극을 보고, 슬픔 속에서 뭔가를 찾으려 했습니다.

하늘의 도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사마천은 사기 열전편, ‘백이숙제열전’에서 자신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천도(天道)는 공평무사해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을 든다. 그렇다면 백이숙제와 같은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들은 인과 덕을 쌓고 청렴 고결하게 살다가 굶어 죽었다. 그리고 공자는 칠십 제자 중에 오직 안회만을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며 아꼈다.

그러나 그의 뒤주는 가끔 비어 있었으며, 지게미나 쌀겨도 배불리 먹지 못하다가 끝내 요절했다. 하늘은 착한 사람에게 보답한다는데,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셈인가? 한편 도척은 날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간을 회치는 등, 포악 방자해 수천 사람의 도당을 모아 천하를 횡행했지만 천수를 누렸다. 그렇다면 그가 도대체 어떤 덕행을 쌓았단 말인가?’

사마천은 ‘천도시비’라는 말로 하늘의 도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의심합니다. 그는 결국, 천도(天道)ㆍ인도(人道)ㆍ세도(世道) 가운데 세도가 중요하다고 판단합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의 이야기, 그 사람이 처한 당대의 상황이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죠. 이런 시각이 사기의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사기, 비정한 현실과 성공을 향한 야욕 모두 담아

사기 한비열전에는 한비자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어느 날 한비의 아내가 ‘제발 우리 남편에게 베 백 필만 내려달라’고 기도합니다. 옆에서 보던 한비자가 백 필보다 오백 필이나 천 필은 어떠냐고 물으니, 아내는 ‘이보다 많으면 당신은 첩을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쉽게 말해 돈이 많으면 바람을 피운다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신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같이 사는 부부지간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신뢰할 수 없는데, 하물며 군신관계, 또는 남남 사이에 신뢰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죠. 결국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사기 손자오기열전에는 위나라 사람 오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기는 성품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비난하는 마을 사람 30명을 죽이고 야반도주합니다. 그후 공자의 제자인 증자에게 유학을 배우던 중, 어머니가 세상을 뜹니다. 오기는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에 가지 않았습니다. 증자가 불효막심한 놈이라고 비난하자, 그는 증자와 사제지간을 끊고 그때부터 병법을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오기는 노나라 군주에게 자신의 전략을 설명하고 장군자리를 청합니다. 마침 제나라 군대가 쳐들어 오던 터라 군주는 그를 장수로 임명하려 했습니다. 이때 신하들이 오기의 아내가 제나라 사람이라며 군주를 말리자, 오기는 아내를 죽여 버립니다.

오기가 장군이 됐다는 소문을 들은 병사들은 새파랗게 질렸죠. 이에 오기는 직접 군장을 매고 병사들과 함께 거친 풀밭에서 잠을 잤지만, 병사들은 그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한 병사의 팔에 심각한 상처가 생겼습니다. 오기는 직접 그 팔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 상처를 치료해줬습니다.

며칠 후, 병사의 어머니가 오기를 찾아와 제발 우리 아이의 종기를 입으로 빨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내 남편이 당신에게 감동해 스스로 당신의 부하가 돼 전장에서 죽었는데, 아들까지 당신 때문에 죽게 할 순 없다는 것이죠. 병사를 다루는 기술이 탁월했던 오기는 이후 20년 동안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둡니다.

자신은 낮추고 상대는 과대평가하는 것이 지피지기의 핵심

현재 주어진 길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걷고 있는지, 살면서 몇 번의 결단을 내렸는지 돌아보기 바랍니다. 결단을 내리고 승부수를 던진 이들이 결국 성공을 거두고 큰 인물이 됐습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는 말은 아주 유명하죠. 하지만 상대를 아는 것도, 나를 아는 것도 둘 다 쉽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적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면서 자신에 대해선 과대평가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고수는 많습니다. 자신은 겸손하게 낮추고, 상대를 과대평가하라는 것이 지피지기의 핵심입니다.

성공을 위해선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합니다. 늘 주변을 주시하고 세상 이치에 순응하며 적당히 견딜 줄 알아야합니다. 엄격한 잣대를 나 자신에게 들이대야 합니다. 다른 이와 내가 다른 시각을 가졌다면, 바로 그 차이에 성공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높은 곳은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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