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무소 국민생각 한필운 변호사

필자는 최근 한 단체의 수장을 뽑는 선거에 선거운동원으로 참여했다. 회원 수가 많지 않고, 치열한 선거 경험이 몇 번 되지 않는 단체였기 때문에 선거운동이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열과 성을 다해 투표권자들에게 공약을 알리고 마음을 구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꽤나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두 번 하라면 못 할 정도로 힘은 들었지만 말이다.

한필운 변호사
한필운 변호사

이 단체의 회장을 뽑는 선거는 유래 없는 공약대결로 치러졌다. 두 후보 모두 단체의 미래를 위해서 오랫동안 고민한 결과를 참신한 공약으로 제시했다.

두 후보의 공약은 비슷한 부분이 있었지만 방향성이 분명하게 달랐다. 선거운동원들은 선거운동을 하면서 회원들에게 공약을 설명하기 바빴다. 회원들도 후보들의 공약을 자기 나름의 잣대를 가지고 평가하기 시작했다.

공약전달을 중심으로 한 홍보물이 제작됐고 선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제한된 투표시간과 투표 당일 폭우에도 불구하고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선거 이후 두 후보 모두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고 단체의 미래를 위해 손을 맞잡았다. 우리 회원들이 자랑스럽고, 양 후보가 존경스러운 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선거과정이 가장 자랑스러운 부분은 양 후보 모두 일체의 흑색선전도, 네거티브도 없었다는 점이다. 후보들은 상대를 경쟁자로 인정하고 투표권자를 향해 공약으로 자신을 어필했지, 서로를 향해 삿대질하지 않았다. 덕분에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다.

필자는 이 단체가 잘했다고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오늘을 대한민국 국민이 각종 선거 때마다 겪어야 네거티브의 향연 가운데에 이런 ‘정책 선거’가 있었다고 필자의 경험을 잠시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국내 정치와 미디어는 ‘비판 또는 검증’과 ‘네거티브 또는 흑색선전’을 혼동하는 듯하다. 정치인들은 밤낮없이 경쟁자를 적으로 취급하고 상종하지 못할 괴물로 만든다. 미디어는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과 이미지를 설치한다.

그런 콘텐츠에 접속하면 누군가를 비난하고 매도하고 있다. 대안도 없고, 근거가 된 사실을 제공하지도 않으면서 ‘누가 더 세게 말하나’ 내기라도 하나 보다. 실로 네거티브의 세상이다.

네거티브의 결과는 무엇인가. 대선이 나라를 반쪽으로 갈라놓은 뒤에도, 두 당은 아직도 지지자를 강성으로 만들면서 상대 당과 싸우는 것으로 존재를 확인받고 있다. 대통령이 되신 분도 제1야당 대표가 되신 분도 지지율의 두 배에 이르는 비호감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저기서 열린다는 대규모집회는 현대인이 맞나 싶은 구호를 늘어놓고, 유튜브는 극단주의적 유튜버가 추종자를 양산하고 있다. 네거티브는 양극화의 시대를 불러왔다.

트럼프 당선 이후의 미국 사회를 진단한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영문 원제는 ‘How democracies die’, 원제가 더 와 닿는다)’의 필자는 흥미로운 진단기를 만들었다. ‘전제주의 행동을 가리키는 네 가지 주요 신호’가 그것이다. 다음 네 가지 조건 중에 하나라도 만족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잠재적 독재자로 분류하고 주시해야 한다고 한다.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 제발 이 진단기가 엉터리이길 바란다. 대한민국에서 저 진단기를 켠다면 항상 불이 켜져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오랜 기간 여러 나라의 기틀을 이루고 현재까지 이어져 온 원동력은 그 안에서 구성원의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고 담아내어 화합을 이루는 공화정을 펼쳤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모두의 권력을 인정해야 한다. 소수가 배제되고, 대화와 타협, 화합과 양보,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이 없는 국가는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없다. 한 사람 또는 한 당이 모든 권력을 가지는 전제주의(Autocracy)로 전락할 뿐이다.

한국 정치에 현재 난무하는 네거티브는 한국 사회를 완충지대 없는 양극화 사회로 전락하는 것을 심화하고 있다. 나와 다르면 적일뿐인 양극화 사회에서 전제주의는 언제든 태동할 수 있다. 네거티브를 거부하자. 양극화를 경계하자.

우리가 쉽게 잊은듯하지만 히틀러도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를 통해서 집권했다. 폭도들의 의사당 난입을 조장한(것으로 의심되는) 트럼프는 21세기 미국 대통령이었다. 과연 우리는 한국에서는 이 같은 광풍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믿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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