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사람] 극단 ‘십년 후’ 대표 맡은 송용일 연출가

연극으로 사랑을 전하겠다는 다짐으로 작은 극단이 탄생했다. 그리고 18년 후, 그 극단은 인천을 대표하는 공연단체로 성장했다. 극단 ‘십년후’는 지난 4월 인천의 성냥공장을 배경으로 한 작품 ‘화’로 인천항구연극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이 상을 일곱 차례나 수상했다. 2006년에는 ‘사슴아 사슴아’로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도 받았다.

창단 이후 오랜 시간 대표 자리를 지켜온 최원영 교수가 10월 27일 사임하고 송용일(54‧사진) 연출가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새롭게 극단을 이끌어갈 송용일 대표를 지난 24일 부평아트센터 달누리극장에서 만났다. 그의 연극 인생과 극단 대표로서의 각오를 들어보았다.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연극 한 길

▲ 근단 '십년 후' 송용일 대표.
“잠깐, 그 부분에서는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친 다음에 대사를 주고받아야지”

조명이 환하게 들어온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진지하게 연기에 몰입하고 있다. 이때 과감하게 흐름을 끊는 목소리. 바로 송용일 대표다. 10월 25일부터 28일까지 부평아트센터에서 공연한 연극 ‘소문’ 리허설이 열리는 현장이다. 송 대표는 객석에 앉아 배우들의 연기를 하나하나 지켜보며 대사와 동선을 구체적으로 다듬었다.

“각자 캐릭터의 개성을 잘 살려야 극이 재밌거든요. 상대방이 대사할 때 내 표정은 어떻게 지을지, 대사를 어떻게 받을지, 이런 세밀한 부분이 극의 완성도를 높이죠”

송 대표는 삼십 여 년 동안 연극 연출과 무대미술 작업을 해온, 이 분야에선 그 누구보다 탄탄한 현장 경험을 가지고 있다. 미술을 전공하던 그가 연극의 길을 걷게 된 데에 대단한 각오나 거창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대학 1학년, 친구와 함께 연극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연극과 연을 맺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극단 ‘현대극장’에 워크숍 단원(연기를 배우는 단원)으로 들어갔다.

당시 극단 ‘현대극장’은 윤복희ㆍ유인촌ㆍ최주봉 등 연기파 배우들이 활동하는, 대학로에서도 손꼽히는 극단이었다. 그곳에서 연기를 배우던 중, 무대를 오가며 스케치를 하는 이가 미술을 전공한 그의 눈에 띄었다. 그길로 무대미술과 무대장치를 배우기 시작했다.

“연극판은 떠나기 싫었고, 먹고는 살아야겠더군요. 그때나 지금이나 연극하면서 돈을 벌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삼십대 초반에 그는 아예 무대장치 회사를 차렸다. 딱 십 년만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당시 그 분야에서 젊은 층에 속했다. 패기와 열정 또한 가득했다. 그는 방송국,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열리는 대형 공연의 무대장치 일을 도맡아하며 이름을 알려갔다.

2003년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중국의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오페라 ‘투란도트’ 무대도 그의 작품이었다. 무대 길이가 무려 120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중국 자금성을 그대로 본뜬 정교하고 웅장한 무대 세트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극단 ‘십년후’에서 남다른 느낌 받아

그는 한창 무대장치 일을 하던 90년대 중반 최원영 전 대표를 만났다. 최 전 대표와 함께 극단을 창단한 장진호 교수가 그를 최 전 대표에게 소개했다. 인천에서 어린이영어연극을 하려하는데 무대장치를 맡아달라는 것. 최 전 대표와 단원들을 만난 송 대표는 잠시 일을 하기 위해 온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이들에게 남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는 그 후 일본과 중국에 다녀온 후 ‘십년후’와 함께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무대장치를 넘어 직접 연출에도 나섰다.

“무대장치 일을 하다보면 공연 리허설을 보게 돼요. 그렇게 본 공연이 일 년이면 오십 편이 넘어요. 하도 보니까 나중엔 연극 구성이 다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대학원에서 연극을 전공하기도 했지만,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 현장에서 배우는 게 훨씬 많죠”

연기 지도를 하다가도 무대장치를 만들 때는 배우들과 함께 연장을 들고 사다리를 탔다. 함께 일을 할수록 ‘이 사람들과는 뭔가 해 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가 연출한 ‘사슴아 사슴아’는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과 연출상을 거머쥐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어머니’는 우현예술상을 탔다. 그는 이밖에도 다수의 작품으로 연출상을 받으며 ‘십년후’와 함께 해왔다.

일 년 내내 연극할 수 있는 공연장 절실

그는 ‘십년후’ 대표를 맡게 된 것을 두고 “안 맡는 게 가장 좋긴 할 것”이라고 농담하며 웃었다. “지역에서 극단을 운영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단원들 월급 주기도 참 힘든 것이 현실이에요. 묵묵히 극단을 이끌어온 최 전 대표가 아니었다면 저 역시 이렇게까지 열정을 쏟지 않았을 겁니다. 그동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길을 걸어왔다면 앞으로는 모험을 좀 해보려고 합니다”

그는 “연극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늘 가난하게 살란 법은 없다”며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일차 목표는 공연장을 확보하는 것이다. 반드시 좋은 시설이 갖춰질 필요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창고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조명이 없으면 촛불을 쓰면 됩니다. 시민들이 ‘그곳에 가면 항상 ‘십년후’의 연극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만한 장소가 필요합니다”

그는 연극은 대중예술인 만큼, 관객들이 영화를 보듯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한쪽에선 공연을 계속 하고, 다른 쪽에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죠.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공연장입니다. 어떻게든 새로운 활로를 찾을 생각입니다”

그는 시민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남겼다. “영화를 보거나 술 한 잔 하기는 쉬워도, 돈 내고 연극 보기는 아직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연극은 일단 한 번 보면 또 찾게 되는 매력이 있습니다. 인천에서 오랜 동안 활동해 온 ‘십년후’에 관심 가져주시고, 공연장도 많이 찾아주세요. 좋은 작품으로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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