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인천청년광장 대표

이정은 청년광장 회원
이정은 청년광장 회원

인천투데이|한 해가 새롭게 시작하는 1월이면 마음이 들뜬다. 사실은 어제와 같은 하루인데도 1월이라는 숫자가 주는 설렘이 있고, 여기저기 새해 인사를 주고받는 따뜻함이 있다.

2023년 1월 2일도 그랬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이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재난문자 알림이 울렸다. ‘4호선 삼각지역 상선 당고개방면 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타기 불법시위로 무정차 통과하고 있습니다. 열차 이용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순간 멍했고, 그 다음에는 화가 났다. 모든 시민은 이동할 권리를 갖지만, 아무나 자유롭게 이동할 수는 없다. 턱을 넘을 수 있는,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대중교통 승하차 시간을 지연시키지 않는 ‘비장애인’만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시민으로서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는 장애인들은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주 오랫동안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기다리라’는 말 뿐이었다. 기다리다 못해, 얌전히 기다리는 ‘착한 장애인’이기를 거부하고, 권리를 요구하는 장애인이 되니, 사회는 이들을 ‘재난’으로 치부한다.

그 재난문자 한 통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행동이 ‘선량한 시민’에게 ‘감히’ 불편을 야기하는 ‘재난’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공기업인 서울교통공사가 말이다.

게다가 ‘무정차’라니. 탈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탈 수 있는 것들을 기다리며 보낸 수 십년의 시간에, ‘무정차’라는 대응은 이제껏 인사치레로 했던 ‘기다리라’는 말보다 후퇴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라 느껴졌다. 왜 우리 사회는 정당한 시민의 요구에 이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는가 부끄러웠고 슬펐다.

서울교통공사가 말하는 시민들은 누구일까. 내가 뉴스 댓글에서 봤던 그 사람들일까. 뉴스 댓글에는 ‘회사에 늦어서, 학교에 늦어서 불이익을 받았다, 당신들(전장연)때문이다. 이제 그만 좀 하라’는 이야기가 참 많다.

나도 지하철을 타는 시민이다. 그리고 전장연의 시위에 불편을 겪어본 적이 있다. 약속이나 회의에 늦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있어서 지하철이 연착되서 늦었습니다~”라고 말하면 “아 그렇구나”하고 끝이었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우리 사회에, 모든 시민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는 걸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장애인 이동권이 필요한 건 알지만, 시민들의 불편을 야기하는 투쟁방식은 그만하고, 대중에게 호응받을 수 있는 활동을 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나는, 시민들의 불편을 야기하는 투쟁 방식을 공동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되는 세상은, 지하철 연착으로 늦은 개개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늦어짐을 기꺼이 감수하는 사회여야 한다.

그래서, 서울시와 교통공사, 나아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재난문자’나 ‘무정차’가 아니라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아니 당연히 사회가 보장했어야 하는 것임에도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알리는 것이어야 한다.

지난해 10월 29일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을 하던 중, 이태원역 무정차를 논의했지만 하지 않았고, 참사현장에 더 많은 사람들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재난 문자도 발송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태원에서의 무정차와 재난문자는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방법이었지만 하지 않았고, 삼각지에서의 무정차와 재난문자는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고, 편 가르는 방식으로 사용됐다.

내가 설레며 맞이하고 싶은 2023년은, 공동체가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우리는 누구나 가고 싶은 곳을 가고, 그 어디서든 안전할 수 있는 사회이다. 이미 우리 일상이어야 할 당연한 모습이지만 1월 2일, 우리 사회가 보인 모습하고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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