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금석 평화와참여로가는인천연대 정책기획실장
최근 공권력의 폭력성이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그 백미는 아마도 인혁당 사건일 것이다. 인혁당 문제는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발언으로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박 후보는 인혁당과 관련한 방송 인터뷰에서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나.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한다”고 발언한 후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이는 재심사건의 경우 재심 판결이 최종 판결이라는 최소한의 상식조차 갖추지 못한 발언일 뿐 아니라, 박 후보의 낡은 역사관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결국 박 후보는 “과거 수사기관 등 공권력에 의해 인권이 침해된 사례가 있었고, 이는 우리 현대사의 아픔”이라는 말로 사과를 대신했다. 그러나 이를 진심어린 사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그런데 이번에 또 다시 공권력에 의한 폭력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건에 대한 재심이 대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져서 귀추가 주목된다. 이른바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 불리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시 전국민족민주연합 사회부장이던 김기설씨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자살을 하자, 검찰과 법원이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강기훈씨를 기소하고 유죄 판결을 선고한 사건이다. 당시 유죄 판결의 근거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감정 결과가 유일했다. 그후 지난 2007년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강씨가 유서를 대필하지 않았다며 국가에 사과와 재심을 권고했다.

그러나 검찰은 즉각 다시 항고했고, 결국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재심이 최종 결정됐다. 유죄 판결을 받은 지 무려 20년 만의 일이다. 그 사이 사건의 당사자인 강기훈씨는 간암 판정과 함께 수술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국가 공권력이라는 폭력에 권력의 실제 주인인 국민이 살해당하고 희생당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진심어린 사과는커녕 가해자인 전직 대통령의 딸로부터, 정치검찰로부터 2차, 3차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군부는 사건의 진범을 뒤늦게 알고도 이를 덮으려 했다. 심지어 증거를 조작하고 진범을 형식적 재판을 거친 후 석방했다. 당시 이들이 내걸었던 명분은 ‘군의 명예와 국가 질서’였다.

유신체제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외친 인혁당 관계자들에게 국가 공권력은 당시 체제의 전복을 꾀했다는 이유를 들어 선고 18시간 만에 8명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즉 정권 자체가 국가의 존재 이유이며 민주화의 요구는 친북세력의 주장이라는 논리가 적용된 것이다.

1991년에는 이른바 ‘분신’정국이라 불릴 정도로 독재군사정권에 항거하는 투쟁이 거세졌다. 이에 독재정권은 제2, 제3의 인혁당이 필요했고, 그것이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긴 시간이 흐르는 사이 우리사회에는 ‘반정부세력은 친북세력’이라는 공식이 자리를 잡았고, 국민이 주인이 아닌 국민 위에 군림하는 정권이 주인인 기형적인 나라가 돼버렸다. 그리고 이를 관철하는 힘으로 바로 폭력적 공권력이 사용된 것이다.

이러한 것이 과연 먼 과거의 일이기만 한 것일까? 결코 아니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역시 이명박정권은 배후 운운하며 공권력의 집중포화가 가해질 과녁을 찾았다. 또한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세력을 친북좌경세력으로 내몰았다. 역시 국민이 주인임을 깨닫고 국민의 목소리를 통해 민주주의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난 지 120여년 가까이 됐지만, 우리 한국사회는 아직도 수많은 드레퓌스와 강기훈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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