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류수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류수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인천투데이|부평은 인천을 대표하는 공업지역이다. 지금이야 제조업이 다소간 약화되면서 상업도시로 변주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평이 인천의 대표적 공업도시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 때문에 때로 인천의 다른 지역에 비해 부평은, 상대적으로 역사·문화적 유산이 적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공업도시 부평에도 식민지 근대의 어둡고 아픈 역사적 흔적이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한낮의 어둠
하늘 끝자락을 말아 올리던 매캐한 연기
어둠과 어둠이 역사 앞에 내렸지
검은 기차에 실려 강제로 끌려온 어린 소년들
깊은 산속 붉은 물이 흘러내리는 동굴
(중략)
죽어도 죽지 않는 소년들
죽어서도 계속 굴만 파는
굴 소년들

- 이설야, ‘굴 소년들’

이설야 시인의 ‘굴 소년들’(굴 소년들, ASIA, 2021)은 부평 조병창과 지하호로 이어지는 인천의 아픈 역사를 끌어안고 있는 시이다. 일제의 대동아전쟁 야욕이 극에 치닫던 1940년, 부평에는 일본 육군의 조병창(군수공장)이 창립했다.

그리고 인근에는 그 물자를 보관하는 지하호도 형성됐다. 이설야 시인의 ‘굴 소년들’은 이곳에서 강제 노역에 동원된 어린 소년들의 비극을 형상화한다.

1930년대 후반 대동아전쟁에 대한 일제의 야욕이 구체화하면서 조선 역시 일제의 총동원체제 속에 편입된다. 부평에 형성된 조병창은 일제의 병참 기지화 정책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조병창은 그 자체로 총후보국(銃後報國)이라는 일제의 위선적인 구호를 현실화 한 것이라는 점에 주목된다. ‘후방에서 나라의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 아래 강제동원이 일상화 되고, 쇠붙이 하나까지도 무기를 만들 물자로 징발했다.

일본 육군의 군수공장이었던 부평 조병창은 그러한 노동력과 물자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 됐다. 말 그대로 사람도 물자도 일제의 야욕에 ‘총동원’된 것이다.

그래서 이곳은 더 강력한 역설적 의미를 갖는다. 일제가 전쟁을 위해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조선을 약탈하고 착취했던 그 역사가, 이제 역으로 전쟁의 잔인성을 드러내 평화의 이유를 되묻는 장소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책 한 권 있다. 바로 지난 2022년 6월 부평구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가 발간한 ‘1945, 부평 조병창 이야기’(탁영호, 딸기책방, 2022)이다.

이 책은 부평 조병창의 역사를 되짚으면서, 왜 우리의 현재에도 그곳을 유의미한 현장으로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오늘 우리가 가진 평화의 가치를 환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평화적 가치와 달리 부평 조병창의 현재는 위태롭다. 부평 캠프마켓 B구역에 남아 있는 조병창 병원 건물의 존치 여부를 두고 민관의 대립이 첨예하기 때문이다.

캠프마켓 토양오염 정화를 위해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국방부의 방안이 시민사회의 반대에 부딪친 상황이다. 현재는 철거가 중지된 상태이지만, 시간과 비용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안전성과 역사적 가치까지 지켜내야 한다는 점에서 불씨는 여전하다.

오늘날 우리는 한류를 통해 문화적으로는 일본의 영향력을 앞지르고 있다. 하지만 역사 문제를 둘러싼 외교적 힘은 여전히 뒤쳐져 있다. 일본은 반성 없는 역사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등으로 자신들의 강제동원 역사를 희석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이를 견제할 우리의 힘은 여전히 부족하다. 그런데 이제, 우리 땅에 남겨진 그 침략의 증거마저 스스로 파괴한다면 무엇으로 그들과 대적할 수 있을까. 인천시와 정부가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의 말에 더 귀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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