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미 정의당 인천시당위원장

한 해를 돌아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때론 한 해를 돌아보는 게 괴롭다. 올해가 그런 해이다. 좋은 기억보다 안타깝고 슬프고 괴로운 기억이 더 많아서 그렇다.

문영미 정의당 인천시당 위원장.
문영미 정의당 인천시당 위원장.

2022년은 그야말로 선거로 시작해서 선거로 끝난 한 해였다. 대통령선거로 시작해서 지방선거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러나 여전히 대선 국면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에서 정책과 이슈는 사라지고 ‘내로남불’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대장동 의혹 등으로 누가 더 잘못이 큰가를 다투었던 대선 당시 이슈들이 여전히 미디어를 가득 채우고 있다.

대선 이슈 이면엔 SPC 파리바게뜨 노동자의 사회적 합의를 지켜달라는 단식투쟁,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법파견과 부당해고에 맞선 투쟁,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과 파업 후 사측이 노동자에게 청구한 470억원 손해배상청구에 맞서 다시 국회에 발의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제정 단식농성까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사안들이 가득하다.

게다가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던 ‘깡통 전세’ 사기 피해 사건까지. 서민들의 삶은 도처에서 무너지고 있으나 정치는 이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거리에서 158명이 숨지는 이태원 참사가 벌어져도, 안전 운전을 위해 노정이 합의한 사회적 합의를 지켜달라는 화물 노동자들의 당연한 요구를 정치는 외면하고 있다. 정치가 실종된 2022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한국의 경제규모 OECD 10위라는 자부심은 그저 말하기 좋은 겉치레에 불과하다. 여전히 노인 빈곤율과 자살율은 1위다. 일하다 죽는 노동자가 무려 1년에 2000여명에 달하는데 정부는 노동시간을 단축하기보다는 늘여야 한단다. 나라가 잘못 돼도 한창 잘못 돌아가고 있다.

불평등과 차별, 기후위기의 심화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위기 또한 심각하다. 1987년 개헌 이후 대통령 직선제라는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는 학교 앞에서 직장 앞에서 집 앞에서 멈춰있다. 정치는 실종되고 ‘법치’라는 유령만 떠돌고 있다.

‘더 많이 더 편리하게 더 효율적으로’라는 인간과 자본의 이기심 때문에 나타나는 기후위기 즉, 기후재난은 지구촌에 사는 우리 모두가 함께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특히, 정부와 기업이 나서지 않으면 거대한 전환을 진행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와 기업이 가는 방향은 혼란 그 자체다.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정치는 신뢰가 우선이다. 사회적 공인 특히, 정치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믿을 수 있어야 하는데 신뢰는커녕 막말과 망언으로 정치의 불신만 키우는 현실이 개탄스럽기만 하다.

입법과 행정, 사법 3권 분립에 기초한 민주공화국에서 협치와 합의의 정치는 사라지고, 오로지 '사법'에 기대 시시비비를 가리는 이 정국이 절망스럽다.

그 와중에 기쁜 일도 있었다.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명예롭게 퇴직할 수 있었고, 또 월드컵에서 최선을 다한 축구선수들이 보여준 꺾이지 않은 마음과 패배를 인정할 줄 아는 용기, 이런 아름다운 모습에 우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뜨거운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

정치도 이랬으면 좋겠다. 누굴 욕하고 비꼬고 조롱하고 혐오해서 공고한 내 편을 만드는 정치는 이제 구시대 유물로 사라져야 한다. 잘한 일에 박수 쳐 주고 응원해 주고, 서로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대범하고 멋진 정치는 정말 어려운 것인가.

현실은 개탄스럽지만 여전히 “정치가 답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현실 정치를 보면 외면하고 싶고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싶은 지경이지만 그냥 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란 무엇이고 정치는 어때야 하는가. 정치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시대의 물음에 답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들의 기본권 요구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시민의 안전과 평화로운 일상을 지킬 정치, 민생을 해결할 정치로 말이다,

새해는 희망차고 밝은 소식이 전해지길 바란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 극복, 민생 돌봄을 위한 담대하고 정의로운 전환, 중소상인 보호를 위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권 보장을 위한 노란봉투법 제정 등 국민에게 희망찬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정치를 기대해본다.

그래야 세상은 살만하다고 조금이라도 좋은 세상이 앞에 있다고, 그렇게 평범한 국민들이 작은 희망이라도 품고 살아갈 수 있게 정치가 좀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고단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며 모두에게 켈트족의 기도문으로 위로를 건네고 싶다.

“당신의 발 앞에 언제나 길이 나타나기를. 그리고 바람은 언제나 당신의 등 뒤에서 불고 당신의 얼굴에는 해가 비치기를”바라는 이 평범한 기도를 소중한 시민들에게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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