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인천투데이|얼마 전 인천 연수구 송도에 있는 한 대학의 초청으로 교육을 다녀온 뒤 근처 송도 센트럴파크를 걸었다. 거리의 벽화에 쓰여있는 ‘송도 : 떠오르는 도시’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고 동시에 슬퍼졌다.

역설적으로 송도는 가라앉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벽화에서 ‘떠오른다’는 뜻이 물리적인 의미로 쓰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때문에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수면 아래로 잠길 곳으로 예상되는 지역 중 하나가 송도라고 예견돼있기 때문에 그렇게 읽힐 수 밖에 없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미국의 기후변화 연구기관과 데이터를 분석해 2030년 해수면 상승과 태풍으로 홍수 피해를 시뮬레이션한 내용의 웹 페이지를 공개한 바 있다. 이 결과를 보면 인천의 피해면적은 462.02km2, 피해인구는 75만2778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외면할 수 있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닌, 이미 실재하는 현실이 되어 재앙이 됐다. 기록적인 폭설, 폭우, 태풍, 산불, 가뭄 등은 우리의 일상을 이미 뒤흔들고 있다. 해수면도 계속 상승하고 있음이 보고되고 있다.

기후 위기에 책임이 없는 저개발 국가들이 제일 먼저 피해를 받고, 착취당하는 삶을 살던 가난한 노동자와 국가가 외면한 장애인이 반지하방에서 숨졌다. 이처럼 잉여자본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약자와 다른 모든 생명들은 없어져도 되는 것쯤으로 여겨왔던 성장우선주의는 모두의 삶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이미 인권과 불평등의 문제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기후위기로 인해 사실상 인간의 모든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며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국가기구가 ‘기후위기는 인권의 문제이자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은 처음이다. 이미 늦었지만, 기후위기를 최대한 늦추고 고통을 최대한 줄이며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행동으로 옮겨야 할 일들은 무엇일까.

인천 연수구 송도 센트럴파크 한 벽에 써져 있는 '송도 : 떠오르는 도시' 문구.
인천 연수구 송도 센트럴파크 한 벽에 써져 있는 '송도 : 떠오르는 도시' 문구.

기후는 우리 모두의 생존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인권의 문제이며 다양성의 문제다. 기후위기가 환경적 재난과 더불어 국가, 지역, 계층 등 다양한 영역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더 위험한 상황에 내몰려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직면해야할 근본문제부터 명확하게 확인해야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어떠한 해결도 불가능하다. 기후위기 상황을 멈추지 못하고 브레이크 없이 인류의 위기 방향으로 질주하도록 만들고 있는 현실의 근본적인 문제는 계속 성장해야 한다고 믿는 ‘성장주의’ 또는 ‘성장신화’다.

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 믿었지만, 그것은 종교적 믿음일 뿐 오히려 인류의 생존에 위기를 가져오고 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성장의 개념은 인간동물, 비인간동물, 자연환경의 착취로 이윤을 창출하고, 소비를 욕망하게 만든다.

지속적인 생산으로 잉여를 만들고 또 버려지게 하는 등 계속해서 착취가 원동력이 되는 사회구조는 황폐화 될 수밖에 없다.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가 유일한 평가 지표였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가 더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는 쓸쓸한 현실이다.

땅 위의 모습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다도 죽고 있다. 수온이 따뜻해지며 바닷 속 산호가 하얗게 죽고 빠르게 사막화하고 있다.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는 여름, 점점 더 추워지는 겨울로 우리에게 위기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21)에서 당시 회원국 197는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1850~1900년)의 2도 아래로 유지하고 1.5도로 제한하도록 노력한다’는 파리기후협약을 받아들였다.

2018년에는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발표해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그로부터 5년의 시간이 흘렀고 나름의 노력을 하는 국가도 있으나 세계적으로 볼 때 별다른 진전없이 이미 1.2도 정도에 도달했다고 한다.

1.5도로 제한하는 것은 이미 달성할 수 없는 목표가 됐다고 인정하고 현실성 있는 목표로 수정해야 하며 목표에 맞는 실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다. 강력한 목표와 함께 그에 맞춰 적응하며 살아갈 수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가 함께 힘을 모아 인류가 가진 모든 역량(돈, 인력, 과학, 기술 등)을 총동원해야 할 때다. 비용이 많이 들지도 모른다. 상상해 본 적 없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이유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직면한 위기상황에 적응하고 생존해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탈성장(post-growth)의 시대’다. 탈성장은 성장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의미를 바꾸는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피폐하게 만드는 성장주의에서 벗어나, 누구나 심리적 정서적 육체적 재정적 안정감을 가지고 사회의 공동체 구성원으로 평등하고 안전하게 포함돼 살아갈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어야 한다.

모든 생명이 공존할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교육·제도·문화의 변화로 이뤄질 수 있다. 인천이 ‘가라앉는 도시’가 아니라 ‘떠오르는 도시’가 되려면 우리는 기후위기에 분명하고 실천적으로 대응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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