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철 전환사회시민행동 운영위원장

신규철 인천평화복지연대 정책위원장.
신규철 인천평화복지연대 정책위원장.

인천투데이|‘슈룹’은 순우리말로 우산을 뜻한다.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제작한 드라마 제목이다. 사고뭉치 왕자들을 위해 치열한 왕실 교육 전쟁에 뛰어드는 중전의 파란만장 궁중 분투기를 그렸다.

높은 시청률로 인기몰이를 하며 최근 종영했다. 필자도 애청자였다. 극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세자선발전이다.

세자선발전 최종 관문에서 유생들은 “노름빚에 시달리던 부부가 동반자살을 합의하고 남편이 처와 자식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을 기도했지만 아내만 죽고 자식들과 자신만 살아남았다. 남편 김 씨가 아내를 살해한 죄에 대해 판결을 내려보십시오”라는 문제를 냈다.

어쩌면 작금의 대한민국의 자화상인거 같아 씁쓸하기만 했다. 여하튼지 간에 경합에 나선 의성군이 먼저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했으니 엄벌에 처해야 마땅합니다. 허나 죽은 아내와 동반자살하기로 합의했고 김 씨에게는 살아남은 아이가 있으니, 자녀를 부양할 수 있게 그 죄를 감형해야 합니다”라고 답한다.

그러나 성남대군은 “안됩니다. 명백한 살인죄로 벌해야 합니다. 우리가 놓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의 목숨입니다. 그 부모는 한 번도 아이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동반자살이라고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피살입니다. 아이의 생사여탈권이 부모에게 있다는 생각부터 바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니 이번 사건은 동반자살이 아니라 가족살해사건이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아이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죄를 물어 김 씨를 엄히 벌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아이를 김 씨로부터 분리해 나라가 보호해야 할 것입니다”라며 상반된 판결을 내린다.

과연 어떤 판단이 올바른 판결일까. 이미 드라마를 시청한 독자라면 유생들의 최종 선택을 알 것이다.

사실 이러한 안타까운 일은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하고 있다. 지난 달에도 이와 유사한 비극이 있었다. 인천 서구에서 일가족 4명 중 10대 아들 2명이 숨지고 부부는 의식 불명인 상태로 발견됐다.

이들 가족은 심각한 생활고를 겪었으며, 이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런 비극적 사건을 접할 때마다 아무 죄 없이 죽어간 아이들이 너무나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다고 그 부모에게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지난 2020년 5월, 자녀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다가 살아남은 엄마 2명에게 재판부는 각각 징역 4년 형을 선고했다.

울산지법 형사11부 박주영 부장판사는 판결문에 “2009년부터 최소 279명(미수 포함)의 미성년 자녀들이 부모의 죽음에 동반됐는데 매달 두 명 꼴이며, 이런 비극이 되풀이하는 원인으로,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에 대한 온정적 사회 분위기가 지목된다”라고 했다.

또한 “동반자살에 숨겨진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온정주의적 시각을 걷어 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살해된 아이의 진술을 들을 수 없다. 동반자살은 가해 부모의 언어이다. 아이의 언어로 말한다면 이는 피살이다. 법의 언어로 말하더라도 이는 명백한 살인이다”고 전했다.

아울러 “부모라는 점이 관대한 처벌의 이유로 거론되는 인식에 동의할 수 없다. 사람을 살해하는 행위는 그 어떤 경우도 용납될 수 없는 중범죄이다”라고 강조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의 일상적 사용은 아동을 부모가 마음먹기에 따라 처분할 수 있는 소유물로 인식하게 해 아동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의견서를 언론사 25곳에 보낸 바 있다.

또한 이들은 “정부는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자녀 살해 후 자살’에 대해서는 예방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자녀 살해 후 자살’에 대한 통계를 구축하고 공표하라. 자녀 살해는 가중처벌을 받는 존속살해(형법 제250조 제2항)와 대조적으로 일반 살인으로 분류되며, 영아 살해는 최고 형량이 일반 살인보다도 낮다. 이와 관련한 법을 개정하라” 등을 요구했다.

이처럼 인권문제는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인권은 모든 사람은 성별, 연령, 인종, 피부색, 출신민족, 출신지역, 장애, 신체조건, 종교, 언어, 혼인, 임신, 사회적 신분, 성적지향, 정치적 또는 그 밖의 의견 등에 관계 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진다는 가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인권의 주요권리 중 생명권은 생명의 가치를 존중받을 권리로, 가장 중요한 권리이자 출생의 바로 그 순간부터 모든 인간이 완전히 가지게 되는 권리이다.” (나무위키)

과연 대한민국의 교육이 인권의식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지도 성찰해 봐야 한다. 최근엔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두고 노동권 침해 논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와 시민 볼모 논란 등 여러 인권 관련 이슈가 커다란 사회적 쟁점이 됐다.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이런 민감한 사회문제에 올바른 입장을 가지기 위해서는 인권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인권은 타인에 대한 존중과 함께 사는 공동체라는 배려에서 나온다.

대한민국처럼 정글 같은 경쟁지상주의 사회에서는 인권의 싹이 자라날 틈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인권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서 더욱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박 부장판사는 “사건의 발생 원인을 부모의 무능력이나 나약함으로 치부할 수 없고, 이런 범행에 대한 온정주의의 기저에는 아이들을 굳건하게 지지해줄 사회적 안전망이 없다는 불신과 자각이 깔려 있다. 아동 보호를 위한 제도와 사회적 안전망을 정비하고, 무엇이 이들에게 극단적 선택을 하게 했는지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평화복지연대는 얼마 전 인천 서구 일가족 비극에 대해 성명을 내고 유정복 인천시장에게 위기에 처한 인천시민이라면 누구나 문턱 없이 지원받을 수 있는 ‘인천시민생활보장제도’와 ‘민생경제민관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그러나 유정복 인천시장은 묵묵부답하며 제물포 르네상스, 뉴홍콩시티 같은 개발사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만일 이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된다면 이는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공동체의 책임이고 시장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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