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희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 센터장

홍인희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 센터장
홍인희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 센터장

인천투데이|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와 인천시립박물관, 옹진군은 2021년 12월 ‘섬 조사‧연구 및 섬마을박물관 조성(운영)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했다.

이에 따라 2022년엔 옹진군 북도면 신도‧시도‧모도를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2025년에 영종~신도 구간에 연륙교가 건설되고 나면 아무래도 섬의 특성이 많이 변화할 것이라 우선적으로 신도‧시도‧모도를 선정했다.

신도, 시도, 모도 조사를 하다가, 모도 횟집 사장님이 낙지를 잘 잡기로 소문이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주민들이 낙지 잡는 모습을 영상과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처음에는 물때도 모르고 가서 언제 가시냐고 조르다가 모도 횟집을 4번이나 방문한 끝에 겨우 날을 잡았다.

사(四)고초려 끝에 영종도 삼목항에서 7시 첫배를 타고 모도에 들어갔다. 미리 준비한 멜빵 형식의 가슴까지 오는 갯벌 장화를 신고 모도 횟집 사장님과 함께 모도 박주기 앞 갯벌로 들어갔다.

그래도 다른 갯벌보다는 단단한 편이라는 사장님 말은 상대적인 것임을 들어가자마자 발이 빠지고서야 깨달았다. 카메라를 목에 걸었다가 이내 곧 가방에 넣었다. 카메라를 갯벌에 처박을 수는 없었다.

한쪽 발을 겨우 빼면 다른 쪽 발이 빠졌다. 한쪽 발을 들다 갯벌에서 안 빠지면 중심을 잃고 절로 무릎이 꿇어졌다. 아 위대하고 신성한 바다 앞에서 역시 난 작은 존재구나. 몇 발자국 옮기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게 만드는 갯벌이라니.

처음부터 뭔가 잘못된 것 같았으나, 이왕 들어온 것 포기 할 수는 없었다. 벌써 사장님은 저 앞에 갔다. 사진은 고사하고 이대로 따라 갈 수는 있나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한발 한발 내딛기 시작했다. 발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걷다보니 갯벌 한가운데 무념무상이 됐다.

한참 낙지를 잡는 사장님의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었다. 사장님은 갯벌에 있는 수많은 구멍 중에서 낙지가 있는 곳을 귀신같이 알아서 삽으로 조금 판 뒤 맨손으로 잡아 올렸다. 낙지를 훅 잡아 올려 얕은 바닷물에 흔들흔들 씻어서 준비해 간 스티로폼 박스에 넣고는 무심하게 또 다시 갈 길을 갔다.

뒷 모습이 흡사 고독한 낙지잡이 사내의 인생 같아서 무언가 멋있게 느껴졌다. 더 깊은 곳으로 가야 했는지, 다 찍었으면 우리 먼저 나가라고 했다. 충분히 찍은 것 같아서 박물관 선생님과 이만 나가겠다고 인사를 하려 했다.

직선거리로 해변과 가까운 쪽이 있길래 그물 손질하는 주민 인터뷰도 할 겸 가까운 쪽으로 가로질러 가려고 했다. 그러나 낙지 사장님은 그쪽은 많이 빠지니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알겠다고 하고 돌아가는 길에 박물관 선생님은 ‘많이 빠지면 얼마나 빠지겠나’하고 호기롭게 갔으나 불과 열 발자국도 못가고 갯벌에 빠졌다. 갯벌에 발목이 들어가고, 종아리가 들어가고, 허벅지까지 들어가자 선생님은 팔을 걷어 부치고 갯벌을 파내기 시작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을 즈음, 더 먼 바다로 갔던 낙지 사장님이 와서 또 무심하게 꺼내주고 갔다. “아니 그쪽은 빠진다니까”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장님은 잘 빠지는 곳인지 아닌지 색깔만 봐도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어쩐지 우리는 너무 힘들게 한발 한발 나아가는데, 사장님은 사뿐사뿐 걷고 있었다. 갯벌 초보인 우리는 전문가의 말을 흘려들었다가 갯벌에서 영영 나가지 못할 뻔 했다.

인천의 갯벌은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의 그 어떤 갯벌과 견줘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면적과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갯벌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것은 추후 인천 등의 갯벌도 포함해 확장 등재를 하는 조건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두 달 전 전남 신안, 전북 고창, 충남 서천은 국립갯벌세계유산보전본부를 유치하기 위해 경합을 벌였고, 신안이 선정됐다. 인천도 얼마 전 주민 경청회를 개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인천의 갯벌도 세계자연유산으로 나아가야한다.

간척으로 많은 토지를 넓혀 왔던 인천이지만 이제는 갯벌을 살리고, 보전하고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신도, 시도, 모도 앞 갯벌은 마을 어촌계에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해산물 채취는 허가받은 사람만 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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