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인천청년광장 대표

이정은 인천청년광장 대표
이정은 인천청년광장 대표

인천투데이|”한국 청년들은 일하러 가서도 죽고, 놀러 가서도 죽는구나.“ 10월 29일에 일어난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보자마자 공감됐고, 슬펐다.

자꾸만 청년들이 죽는다. 빵을 만들다가 죽고, 기차를 고치다가 죽고, 팍팍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축제를 즐기러 갔다가 죽었다. 그 죽음의 공간은 너무나도 일상적이다. 내 직장, 내 동네, 자주가는 거리.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안전할 수 없고, 지켜주지도, 책임지지도 않았다.

우리가 잃어버린 수많은 청년들을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레 내 주변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대학에 다니는 후배들은 요즘 시험기간이다. 시험 2~3주 전부터 몇 일을 밤을 세며 밥 먹을 틈도 없이 과제와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그들의 잠을 앗아가고, 밥을 뺏어가도 ‘어쩔 수 없잖아’라고 말하며 기꺼이 그 전쟁같은 삶을 잇게 한다.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매번의 공채 일정, 시험 일정에 맞춰 하루 하루를 산다. 힘들다는 생각을 할 때면, “너 왜 이렇게 나약해”라고 자기 채찍질을 한다.

일을 하는 청년들도 다르지 않다.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이나마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다)을 받으며, 위험한 일자리에서 불안하게 일을 한다.

운 좋게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는 금요일 밤 12시에 집에 가서 옷만 갈아입고 다시 회사로 간다. “우리 회사 연봉이 높은 건 일을 그 만큼 많이 시켜서더라. 취준 때는 그걸 몰랐어. 이게 사는 거냐”는 자조섞인 푸념을 하며 퇴사를 생각한다.

1990~2000년대에 태어난 우리는, IMF로 가정에 불화가 생기고, 친했던 친구들이 전학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으면 삶이 무너진다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체득해버렸다.

자라면서는 세월호 참사를 목격하거나 참사의 대책이라고 나왔던 ‘수학여행 폐지’로 친구들과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즐거움을 접어야했다. 이후 대학에 와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 축제 등을 빼앗겼다.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 10월 29일 그 하루는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하고 있지만 미래가 불투명한 청년세대에게 그나마 숨통을 틔워주는 해방구였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하루마저도 지켜주지 못했다.

그리고 참사 이 후, 여느 때와 다를 바없이 ‘니 탓’이 시작됐다. 충분히 열심히 사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너 왜 이렇게 나약해”라고 물었던 마음은 다른 이의 죽음 앞에서 날선 말이 됐다. 일터에서 죽은 청년에게 ‘안전하게 일하지 않은 당신 탓’이라고 말했던 거처럼, ‘남의 나라 잔치에 놀러 나간 당신 탓’이라는 말들이 인터넷 댓글 창을 채웠다.

길거리에서, 일터에서, 여행 길에서, 친구와 약속장소에서, 내 일상 어디서든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제 이런 것까지 시민이 알아서 걱정하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내가 늙어서 자연사할 수 있을까’ 싶다. 죽음의 그림자가 내 일상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하고 무섭다.

정부는, ‘주최가 없는 축제이기에 더 안전을 신경썼어야했다’는 말 대신 ‘주최가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메뉴얼의 미비로 발생한 대형 참사였다’고 인정하는 대신 ‘메뉴얼에 없어서 대비할 수 없었다’고 했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면서도, 무엇이 죄송한지도 모르겠지만, ‘죄송하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쓰기 싫었다. 서울 한복판, 번화가에서 156명이 죽고 187명이 다친 게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다들 내 또래라 남 일 같지 않아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쓰기 싫었다.

참사는 이미 벌어졌는데, 이제와서 유동인구가 어쩌니, 일방통행이 어쩌니하며 저마다 사고의 원인과 대책을 이야기하는 데에 말을 보태고 싶지 않았다.

정부가 나서서 추모를 하라는 게 기분이 나빠서 쓰기 싫었다. 참사 이후 쏟아지는 다큐멘터리도 보고 싶지 않았다. 마주하기 싫었다.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나서야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든 건, 이제야 살아남은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기자회견을 했다. 방송을 보는 게 힘들어, 기사의 활자로만 접한 기자회견에는 희생자 저마다의 사연과 가족들의 이야기, 울음소리가 묻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참사의 책임을 묻고, 희생자 모두가 소중하게 기억되고 추모될 수 있게 글을 쓰는 것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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