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미국여행 1 - 미국 서부(마지막편)

◎ 할리우드

또,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서부시간대로 하면 새벽 3시인 셈이다. 하마터면 못 일어날 뻔했다. 아침 기상을 위해서는 웨이크업 콜도 필요하고, 숙소의 시계도 있으면 맞춰놓고, 휴대폰도 알람시간을 맞춰놓고, 개인 알람시계도 가져가면 좋다. ‘김치’라는 한국 식당에서 우거지해장국을 먹고 라스베이거스를 떠났다.

외국 여행 중 한국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번에 약간 생각이 바뀌었다. 교포들의 생계 를 위해서는 한식당을 적당히 이용해야한다.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가는 날이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라스베이거스와 같은 삶의 방식이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까? 다음은 미국을 다녀와서 지역 일간지에 쓴 칼럼의 일부분이다.

<<네바다 주 사막에 신기루처럼 떠 있는 라스베이거스를 이번 여름에 다녀왔다. 라스베이거스는 듣던 대로 화려하고 눈이 돌아갈 정도로 볼 것이 많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서있는 호텔, 밤마다 호텔과 거리에서 계속되는 갖가지 쇼와 도박. 라스베이거스는 인간 욕망의 경연장이었다.

인간의 삶이 얼마나 화려할 수 있는지, 인간이 하늘 위로 얼마나 더 높이 오를 수 있는지, 인간이 얼마나 더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를 겨루는 시합장이었다. 라스베이거스의 전력 사용량은 어마어마해서 10만명이 사는 도시에서 1년 간 쓰는 전기량을 하루에 쓴다고 하기도 하고, 50만명이 사는 도시에서 1년간 쓰는 전기량과 같다고 하기도 하고, 하루에 미국 전체가 쓰는 양과 같다고 하기도 한다.

라스베이거스는 1년 내내 공사를 하는데 건축비용으로 아무리 많은 달러를 쏟아 부은 호텔이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그대로 파괴한다. 오 쇼, 르르브 쇼, 카 쇼 등 라스베이거스의 쇼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현실에 실현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라스베이거스뿐 만 아니라 미국인들의 에너지 소비행태는 거의 ‘중독’이다.

미국은 세계 총인구의 6%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에너지 총소비량의 3분의 1을 쓴다. 그 중에서도 미군은 미국 내에서 가장 큰 단일 에너지 소비기관인데 연방정부 에너지 예산의 80%를 국방부가 쓴다. 만일 지구상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하나 더 있다면 현재의 지구는 이것을 지탱할 수 없다. 지구는 당장 파멸에 이르고 말 것이다.

▲ 그라우만스 차이니스 극장 앞을 중심으로 5킬로미터에 걸친 보도 위에 영화ㆍ텔레비전 스타, 유명 뮤지션의 이름이 새겨진 별 모양의 브론즈 2500여개가 깔려 있다.
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에서 “우리 후손들은 우리가 현대라고 부르는 지난 400년을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파멸의 길로 갈 게 뻔히 예상되는 짓들을 어떻게 그렇게 멀쩡히 했느냐”고.

엔트로피법칙이란 열역학 제2법칙을 말한다. 모든 물질과 모든 에너지는 오직 한 방향으로만 변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방향이 유용한 상태에서 무용한 상태로, 획득 가능한 상태에서 획득 불가능한 상태로,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만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염과 쓰레기란 엔트로피의 다른 이름이다.

모든 기술은 당초부터 예측 불가능한 2차 역효과를 품고 있다. 2차 역효과는 차라리 그 기술 없이 지내는 것보다 더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미래의 역병을 풀어놓는 일이다. 매우 작은 양으로도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방사성 물질을 인류문명의 역사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안전하게 저장해두려는 계획은 얼마나 무모하고 황당무계한가.

태양에너지도 궁극적인 대안은 아니다. 태양에너지로 뉴욕시를 움직이려면 뉴욕시 면적의 6배를 태양전지판으로 덮어야한다. 태양에너지는 근본적으로 대량생산이나 고층빌딩시스템에 맞지 않는다. 태양에너지는 애초부터 기생적인 것이다. 태양에너지를 얻기 위해 필요한 모든 부품은 화석연료의 에너지원으로 만들어진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의 물질적 부를 대폭 줄여야한다. 미국식 물질적 풍요를 절대 꿈꾸지 말아야한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물질적인 욕구의 충족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한다. 우리가 에너지를 소비하면 소비할수록 우리 뒤에 올 모든 생명에게 남겨질 에너지의 몫은 줄어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능한 한 적게 쓰는 것이다. 그래서 지구 쇠락의 과정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다. 그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라스베이거스는 과연 어떻게 될까?>>

▲ 그라우만스 차이니스 극장 앞.
벌었던 한 시간을 다시 앞으로 돌려놓았다. 교통의 중심지 바스토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캘리포니아 최대의 도시이자 영화의 도시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로 달려갔다. 또 5시간 걸렸다. 점심으로 몽골리언을 먹었다. 국수를 볶아내는 것이었는데 먹을 만했다. 그라우만스 차이니스 극장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차이나 스타일의 극장으로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빨리 개봉하는 극장으로 유명하다.

‘자동차 사회인 미국에서 눈길을 끌려면 건축이 눈에 뜨여야만 한다’는 이론을 최초로 내놓은 역사적인 건축물로 1927년 극장왕 시드 그라우만에 의해서 창설됐다. 극장 앞마당에 할리우드 스타 170여명의 손과 발 모양을 본 뜬 부조가 유명하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배우들의 부조가 눈에 띄었다.

그라우만스 차이니스 극장 앞을 중심으로 5킬로미터에 걸친 보도 위에 영화ㆍ텔레비전 스타, 유명 뮤지션의 이름이 새겨진 별 모양의 브론즈 2500여개가 깔려 있다. 브론즈 판에 새겨진 각종 마크는 활동분야를 나타내는데 촬영기는 영화, 티브이 세트는 티브이, 레코드는 음악, 마이크는 라디오를 상징한다.

돌비극장은 2월 아카데미 영화제와 시상식이 열리는 곳이다. 3500명이 들어가는 이곳은 원래 코닥극장 이었는데 모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돌비극장으로 바뀌었다. 할리우드는 연중 맑고 화창한 날씨에 주목한 영화 제작사들이 하나 둘 몰려오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현재는 대부분 영화사들이 떠나고 영화 관련 건물은 위에서 말한 그라우만스 차이니스 극장과 돌비극장 정도다.

그래도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재건축ㆍ재개발을 하는 등 애를 쓰고 있다. 하도 커서 비행기에서도 보인다는 유명한 할리우드 사인은 원래는 ‘HOLLYWOODLAND’ 13개 글자로 된 부동산 광고 간판이었다고 한다. 방치돼있던 것을 상공회의소가 사들여 ‘LAND’를 떼어 냈다. 한 글자의 크기가 높이 약 15미터, 폭이 약 9미터라고 한다. 어쨌든 지금은 할리우드의 상징이 됐다.

◎ 게티센터

▲ 게티센터. 미국의 석유 재벌 폴 게티의 개인 소장품을 모아놓은 미술관이다.
다음 일정은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들르는 것인데 일본 오사카 여행 때 가봤기 때문에 포기했다. 일행에서 빠져나와 로스앤젤레스 교외에 있는 게티센터로 갔다.

교포가 운영하는 택시를 빌렸다. 미국에서는 버스 또는 두 명 이상이 탄 승용차만 다니는 카풀 전용차선이 있다. 그런데 아무도 위반하지 않는다. 벌금이 무섭기 때문이다. 우리 돈으로 60만원쯤 한다. 캘리포니아 주의 벌금은 다른 주보다 훨씬 세다. 그 중에서도 특히 로스앤젤레스의 공권력이 가장 강력하다. 다양한 민족이 살아가려니 갈등이 많고, 그것을 강력한 법으로 다스린다. 범죄가 발생하면 경찰이 출동하는데 부자동네일수록 빨리 출동한단다.

그건 그렇고, 나는 여태까지 카풀이 자동차에 사람을 가득(full) 태우고 다니자는 제도인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 car ‘pool’이다. ‘pool’에는 수영장 말고도 ‘공동으로 관리한다’는 뜻이 들어있다. 나의 무식의 끝은 어디인가? 기사님께 미국에 이민 와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을 물어보니, 직업에 귀천이 없는 것, 체면치레 안하고 살아도 되는 것이란다.

남 눈치 안 보고 살아도 되는 미국. 그래서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하단다. 그밖의 것들은 거의 한국과 같다. 한인타운에서는 자장면 배달도 된단다.

주차장에서 산 위의 게티센터까지 트램(=도로 위를 주행하는 전차)을 타고 갔다. 게티센터는 미국의 석유 재벌 폴 게티의 개인 소장품을 모아놓은 미술관이다. 14년에 걸쳐 건설됐고 1997년에 완성됐다. 1조원이상 이 투입됐다.

운 좋게 클림트 드로잉 특별전과 유명한 사진작가 허브 리츠의 사진전을 하고 있었다. 허브 리츠는 리처드 기어의 친구여서 연예인들의 사진을 많이 찍었다. 동서남북 4개의 상설 전시관은 독립적이면서도 연결이 됐다. 유명한 고흐의 ‘아이리스’를 비롯해서 모네, 렘브란트의 진품 등 세계적인 미술품들이 전시돼있었다.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플래시만 안 터트리면 된단다. 친절하다. 중앙에는 정원이 있다. 산 위에 있으니 로스앤젤레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모든 시설이 전부 무료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전형이다. 정말 부럽다.

하드를 하나 사먹었는데 그건 너무 비싸다. 3달러가 넘는다. 돈을 쓸 때 종이돈은 어렵지 않은데 동전이 약간 어렵다. 1센트짜리는 페니, 5센트짜리는 니켈, 10 센트짜리는 다임, 25센트짜리는 쿼터라고 씌어 있다. 동전에 숫자가 없으니 헷갈린다. 그걸 뭐하러 외우고 있나? 그냥 돈에 숫자를 쓰면 될 것을. 이해하기 어렵 다.

로스앤젤레스도 출퇴근시간 때는 도로가 거의 주차장이다. 로스앤젤레스의 한인 타운으로 나왔다. 로스앤젤레스시티 번화가를 다운타운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한국인의 소유다. 한인 타운은 ‘서울시 나성구’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 간판이 많다. 서울에서 유행하는 아이템들이 몇 달만 지나면 로스앤젤레스에도 생긴다. 어쨌든 한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한국인이 사는 곳이다. 한국인 성당도 있다.

아리수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우리나라 맥주를 한잔 먹었다. 한 병에 8달러였나? 소주는 더 비싸다. 미국은 주(STATE) 밑에 카운티가 있고 그 밑에 시티가 있다. 로스앤젤레스 주의 경우 카운티는 1000만명이 넘고, 시티는 400만명이 넘는다. 105번 고속도로를 타고 공항 근처 숙소 ‘홀리데이 인 엘에이엑스(LAX)’ 로 갔다. 노을 속에 또 하루가 저문다.

나는 여태 이 호텔의 이름 ‘홀리데이 인’에서 ‘인’이 ‘in’인 줄 알았다. ‘inn’, 여관이란 뜻인데. 와이파이가 된다. 비록 로비뿐이기는 하지만. 미국 대부분의 호텔엔 인터넷 연결선이 없다. 있어도 비싼 돈을 받는다. 와이파이도 안 된다. 객실에 냉장고도 대부분 없다. 당연히 물도 없다. 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인터넷 천국, 물 천국이다.

5일 동안 버스를 운전해주던 운전사, 우리를 안내 해주던 가이드와 헤어졌다. 힘들 텐데도 여행 내내 인상 한 번 쓰지 않고 생글생글 웃어주는 드라이버는 처음 봤다. 노련한 솜씨로 물 흐르듯 여행을 진행해주던 가이드. 세상의 모든 이별은 아쉽다.

◎ 덴마크 민속마을 솔뱅, 몬트레이 페블비치

▲ 산타 바바라 근처에 있는 덴마크 민속마을 솔뱅.
여행은 서서히 막바지를 향해 달려간다. 덴마크 민속마을 솔뱅과 몬트레이 페블비치와 17마일 드라이브를 보는 날이다. 왼쪽으로 태평양이 펼쳐진다. 바닷가에 캠핑카가 늘어서있다. 어떤 사람들은 은퇴한 후 캠핑카를 사서 10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닌다.

두 시간 반쯤 달려 산타 바바라 근처에 있는 덴마크 민속마을 솔뱅에 도착했다. 미국 안의 유럽이라 불리는 솔뱅은 1911년 덴마크계 이민자들이 세운 마을 인데 솔뱅은 덴마크어로 ‘햇빛의 들판’이라는 뜻이다. 마치 덴마크에 온 것처럼 집과 거리가 아기자기하다. 아이스크림도 맛있다. 인어공주상을 만들어 놨는데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는다.

또 4시간을 달려 몬트레이로 이동했다. 몬트레이는 17마일 드라이브 코스와 그 안에 있는 세계 최고의 골프 코스 페블비치로 유명한 곳이다. 해마다 유에스(US)오픈을 비롯한 세계적인 골프대회가 열린다. 타이거 우즈가 우승한 곳이다. 17마일 드라이브 코스는 태평양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자연과 최고급 골프장, 대부호들과 연예인들의 별장이 모여 있는 곳이다. 제임스 딘도 자주 다녀갔고, 존 스타인벡의 ‘통조림거리’의 배경이기도 하다. 히치콕의 ‘새’의 마지막 장면도 여기서 찍었다. 마돈나와 클린트우드의 별장도 있다.

도로를 드라이브하는데 입장료까지 받는다. 날씨가 좀 전까지 섭씨 47도였는데 페블비치에 내리니 21도다. 땅이 넓어서겠지만 어쨌든 날씨가 가혹하다. 그래서 미국을 달리는 버스는 대체로 튼튼하다. 값도 비싸서 6억원쯤 한다. 바퀴도 10개가 넘는다. 버스 안 에 콘센트도 있고, 티브이 화면도 비행기처럼 여러 개다.

버드락에서 태평양을 바라봤다. 새와 물개가 어울려 놀고 있다. 17마일 안에 유일한 동양식 건물이 있는데, 미쓰비시 회장의 별장이다. 골프장에 도착하니 시원하다. 여기가 티브이로만 보던 페블비치 골프장이다.

▲ 페블비치 골프장.
한국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산호세로 이동해서 미국에서의 마지막 짐을 풀었다. 맥주를 한잔 하려는데 상표가 낯설다. 모델로? 자세히 보니 멕시코 맥주다. 캘리포니아 대부분 지역에 멕시코 사람들이 많이 산다. 하기야 옛날에는 전부 멕시코 땅이었다. 미국에서 전쟁을 일으켜 뉴멕시코ㆍ캘리포니아ㆍ콜로라도ㆍ와이오밍 주 등을 할양받아 한반도 넓이의 15배에 달하는 300평방킬로미터의 영토를 넓혔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불법 월경이 아니라 옛날 자기네 땅으로 들어와 사는 거다. 멕시코인들이나 히스패닉이 없으면 미국 경제도 잘 돌아가지 않는다. 소위 쓰리디(3D)업종은 모두 이들이 담당하고 있다.

아침을 먹고 숙소 주변 산책을 했는데, 회사 사무실인지 공원인지 모를 정도로 사무실이 아름드리나무 들에 둘러싸여 있다. 부럽다. 실리콘밸리를 지나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이동했다. 시간이 많이 남아 공항을 둘러봤다. 고속철도인 바트 플랫폼도 보인다.

한국행 싱가포르 항공기를 탔다. 샌프란시스코 시티가 안개에 싸여 있다. 시계를 다시 앞으로 돌려놓았다. 마치 벌었던 시간을 빼앗기는 것 같다. 잠이 안 올 까봐 일부러 한 숨도 안 잤다. 한국에 도착하면 밤인데. 오랜만에 한국 신문을 보니 반갑다. 나 없어도 대한민국은 쌩쌩 잘 돌아가는데, 여행을 떠날 때면 왜 그렇게 마음이 불편한지 모르겠다.

짧은 시간에 참 많이 돌아다녔다. 8박 9일 동안 1만 킬로미터를 넘게 다녔다. 미국 동부 쪽으로 한번 더 와야겠다. 이런 저런 상념 속에 자꾸 시계를 본다. 그래도 한국 도착 시간까지는 아직 멀었다.
▲ <글ㆍ사진> 신현수 시인ㆍ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