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미라ㆍ사단법인 마중물 간사
신화와 꿈은 다르다. 신화는 신이나 영웅의 이야기로서 매우 이루기 힘든 일이나 획기적인 업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즉 신화는 특출한 소수만을 대상으로 한 전설이다. 반면 꿈은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으로서 누구나 꾸고 있는 간절한 소망이다. 신혼의 꿈처럼 꿈은 우리를 신나게 하고 역동적으로 만든다. 그렇다면 중산층이 되고자 하는 소망은 신화일까, 꿈일까?

중산층이라는 꿈은 신화이다

몇 주 전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결혼 3년차인 친구는 요즘 둘째 출산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단다. 아이 하나 정도라면 맞벌이를 해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킬 수 있고, 중년쯤에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할 도리도 하며 가끔 여행도 하고 문화생활도 즐기면서 여유 있는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중산층의 꿈을 잃지 않기 위해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꿈 노트를 끊임없이 적어간다고 했다.

내 친구만이 아니다. 요즘 젊은 일반인들의 로망은 중산층으로의 진입인 것 같다. 이를 위해 독을 채우느라 자신의 위치도, 주변도 살필 여유도 없이 쉼 없이 달려가고 있다. 그렇게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는 다가올 여유로운 중년의 품격 있는 나날들이 펼쳐질 것을 꿈꾸면서 말이다. 이처럼 중산층은 이들이 이루고 싶은 꿈인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과연 그럴까? 친구가 꿈꾸는 삶이란 이 사회에서는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후배의 롤모델인 내 선배가 떠올랐다. 50대인 그는 이 모든 과정을 차분차분 밟아 중산층의 꿈을 이룬 대기업 부장이다. 내 친구의 꿈인 성공한 중년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이 선배가 실질적인 중산층으로 여유를 누린 시간은 부장을 달고 난 이후부터였으니까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 현재 그는 달콤했던 짧은 여유를 뒤로 하고 얼마 남지 않은 정년퇴직과 동시에 닥칠 생계문제라는 숙제를 달고 산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자산은 부동산에 묶여 있다. 그런데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다. 그는 퇴직한 후 가족 중 큰 병이라도 걸리거나 수입이 여의치 않을 경우 곧바로 은퇴빈곤가구로 전락할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공포감을 갖고 있다고 고백한다.

함께 꿀 때 꿈이 된다

선배는 ‘근면성실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갖고 살아왔다. 결국 그는 근면이 안정적인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꿈을 현실화했다. 그는 시장에서 열심히 산다면, 보상이 주어진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 그래서 중산층은 신화가 아니라 누구나 다 도달할 수 있는 꿈이었다. 따라서 빈곤의 책임은 나태에 있기 때문에 개인의 책임이라는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물론 50대의 선배 즉 1970년대와 80년대 고도성장기를 살아온 소위 386세대들은 그럴 개연성이 컸다. 대학을 나오고 기업에 취직하면 적당한 시기에 집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과연 지금도 이 공식이 통할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고도성장의 시기가 끝이 나고 청년들은 사회 초입부터 실업을 경험한다. 노동시장은 유연화돼 비정규직이 일반적인 고용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부동산에 대한 투자도, 주식에 대한 투자 어느 것도 안심할 수 없다. 특히 어렵게 잡은 직장을 언제 그만둘지 알 수 없다. 아이들의 양육비와 교육비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성실성으로 안정된 삶이 가능한지, 그리고 이렇게 가면 중산층에 도달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중산층의 꿈은 이제 신화가 되고 있다.

‘워킹푸어’라는 책은 중산층이 되는 길로 숙달된 기능ㆍ충분한 급여ㆍ승진 가능성이 있는 직업ㆍ분명한 목적의식ㆍ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하며, 빚이나 질병, 중독증이 없고, 제대로 된 가족과 훌륭한 친구관계망, 민간이나 정부기관으로부터 적절한 원조도 있어야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다. 이 조건들의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면 안정된 삶을 위한 목표 달성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못 박고 있다.

예전에 꿈이었던 것이 이제 신화가 되었다. 개인의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었던 중산층이라는 꿈은 소수 영웅들의 이야기인 신화가 된 것이다. 나는 의문이 든다. 내 친구는 이것을 알기나 할까? 둘째아이를 포기하는 대가로 중산층의 꿈을 살 수 있다고 진짜 생각하고 있을까? 내 선배는 퇴직 후 과연 지금의 조건을 유지하면서 앞으로 남은 기대수명인 90세까지 잘 살 수 있을까? 나는 새로운 확신을 갖게 된다. 이제 혼자 꾸는 모든 것은 신화가 될 것이다. 함께 꿀 때 꿈이 된다.

※‘마중물칼럼’은 사단법인 ‘마중물’ 회원들이 ‘상식의 전복과 정치의 회복’을 주제로 토론하고 작성한 칼럼입니다. 격주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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