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나현 서울시립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장

윤나현 서울시립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장
윤나현 서울시립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장

인천투데이|얼마 전 점심시간 동료들과 나눈 이야기이다. “전자발찌 찬 배달원 수백명... 업체 ‘법 바꿔달라’”라는 제목의 뉴스 기사가 시작이었다. 보도를 보면, 법무부가 관리하는 전자감독(전자발찌) 관리 대상자 다수가 배달라이더로 활동하고 있는데, 아직 관련 법이 없어 성범죄자의 취업을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떠올려보니 그간 진행한 성범죄 신고 의무와 성범죄자 취업 제한 대상 기관 중 배달업은 없었다. 취업 제한 대상 기관에는 종사자 또는 취업예정자에 대해 성범죄 경력을 조회할 의무가 있고 관련 교육 역시 반드시 이수하게 돼있다.

매해 대상 기관이 확대돼 여러차례 교육을 진행해온 터라 그래도 성범죄 해결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도 자체에 큰 구멍이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참담했다.

법과 제도의 빈틈은 비극적 사건으로 이어지고 사회적 약자를 향한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불안과 분노, 체념을 넘나들며 성토하는 사이 이야기는 어느새 각자의 경험담을 나누는 것으로 이어졌다.

최근 독립한 1인 가구 여성이 가족들이랑 살 때는 편하게 배달을 이용했는데 이제는 배달 음식을 못 시켜 먹겠다고 했다. 어쩌다 한번 시킬 때면 대면 결제 시 할인되는 카드가 있지만, 꺼림칙해 그냥 할인을 포기하고 비대면 사전 결제한다고 했다.

한 여성은 주문 시 라이더에게 전하는 메시지 중 하나인 “조심히 안전하게 와주세요”에 담긴 친절함이 ‘이 여성이 호감을 표현하는 것이다’라는 오해의 소지가 될까 싶어 아예 메시지를 남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한 1인 가구 여성은 배달 음식이 괜찮으면 “남편이 좋아하더라고요”라고 없는 남편을 만들어서 리뷰를 쓴다고 했다. 몇 마디 주고받았을 뿐인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 서로가 왜 그렇게 하는지 공감돼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 이러한 일들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몇 해 전부터 1인 여성 가구를 위한 팁으로 ‘창가에 남자 옷을 걸어라’ ‘현관에 남자 신발을 두어라’ ‘택배를 시킬 때 험상궂은 이미지의 남자 이름을 사용해라’와 같은 것들이 공유됐다.

부득이하게 대면해야 할 때에는 ‘파를 썰어라’(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흉기가 있어야 한다)는 노하우 등이 공유됐으니 더 이상 어떤 설명이 필요하랴.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이러한 노력의 이유는 단 하나이다. 여성들에게 성폭력은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2018년 부산에서 전자발찌를 착용한 배달기사가 한 여성의 자택에 강제로 침입해 성폭행을 시도한 사건, 지난해 8월에 화장품 방문판매업 종사 전자감독 대상자가 전자발찌를 끊고 여성 2명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법무부 발표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전자발찌 부착자가 성폭력 재범을 저지른 사건은 291건이다. 전자발찌 부착자의 성폭력 재범 사건 수는 2019년 55건, 2020년 41건으로 다소 감소했지만 지난해 46건으로 증가하는 추세로 알려져 있다.

성범죄가 재범률이 높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며 성범죄 전과가 많을수록 전자발찌를 끊고 재범할 확률이 3.6배나 높다고 하니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낯선 이를 혼자 대면하는 것, 자기 집 주소를 노출하는 것에 민감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리고 굳이 이러한 통계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그간 경험했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 안전을 지키기 위한 감각을 쓰게끔 발달한다. 그러므로 배달 앱 사용 하나에도 여성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발달한 감각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는 축적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이자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인 자구책이다. 그리고 성폭력이 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심각한 폭력이자 범죄라는 당연한 사실이 아직도 여성들이 외쳐야만 하는 구호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다시 질문을 해야 한다. 젠더에 기반한 구조적 차별과 폭력을 인식하고 어떠한 폭력도 결코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교육은 과연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가. 성범죄를 예방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사회는 폭력의 원인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묻고 있는가. 피해 회복을 위해 우리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는가. 그리고 2022년 우리는 왜 또 안타까운 죽음을 마주하고 또 잊어가고 있는가를 말이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 어디서든 누구나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사회가 피해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국가가 책임 있는 대책을 세울 때 이러한 끔찍한 사건을 멈출 수 있다. 책임과 노력이 다해지지 않는 사회에서 불법 촬영과 협박, 스토킹은 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심각한 폭력이라는 말, 피해자는 국가와 사회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무색해지고 만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한 가지 당부를 전하고 싶다. 불과 한 달 여전 불법 촬영과 협박, 스토킹 등으로 살해당한 신당역 여성노동자 추모 현장에는 지금도 많은 이들이 추모의 마음을 담아 적어놓은 ‘여자라서 죽었다’라는 말이 빼곡히 남겨져 있다.

당신이 부디 이 말을 진지하게 고민해주기를. 여러 번 곱씹어보아 당신 곁에 오늘도 살고 있는 여성들이 외치는 여성들의 죽음의 이유가 여성들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흔해서라는 역설이기도 함을 부디 당신이 알아차리길.

※ 외부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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