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동희 극작가
내년도 예산안을 짜느라 기관마다 부서마다 바쁜 철이다. 재정난이라는 답답하고 무거운 말을 하도 들어온 터라 새해 살림살이가 어떻게 잡힐지 걱정과 기대가 뒤섞이지만,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고 편안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예산을 세우려면 부서별로, 혹은 사업장별로 해를 넘겨가며 계속해야하는 사업이 있고, 더러는 해마다 반복해서 해야 하는 사업도 있다. 또 중단해야할 사업과 취소해야할 사업도 있을 게다. 이런 와중에 부서마다 꼭 해야 할 사업에 들어갈 예산을 따내려고 예산부서나 의회 등을 분주히 살피는 것도 이즈음이다.

인천시의 문화예술분야 예산 편성을 위한 토론회도 지난달에 열렸다. 역시 재정난의 여파인지 ‘이거다!’ 하는 사업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대체로 올해 진행된 사업의 틀에 견주어 기준을 삼은 게 아닌가 싶다. 그나마, 이렇게 제시된 기준이나마 계획대로 지켜질지 두고 볼 일이다.

재정위기에 대한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가장 먼저 규모가 축소되거나, 심지어 사업 자체를 없었던 일로 해버리는 곳이 문화예술분야다. 꼭 해야 하는 사업이라기보다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식이고, ‘문화예술은 배가 부른 뒤에 해도 괜찮다’는 말로 뒷받침을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예산안과 관련한 말 중에 가장 흔히 쓰이는 말이 ‘불요불급(不要不急)’이다.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일에 예산이 쓰여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시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만들어낸 세금으로 운영하는 예산이 불요불급한 일에 쓰인다면 크나큰 잘못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꼭 필요하고 급한 곳에 예산을 쓰는 일이야 말로 각 부서나 예산부서, 의회 등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할 일이다.

혹여 특정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핑계로 불요불급이라는 말을 가져다 쓰지는 않는지 냉정히 살펴볼 일이다. 단체장의 공약사업이거나 시민들에게 보이기 위한 이벤트에 불요불급한 예산이 들어가서는 곤란하다. 공약을 이행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공약이기 때문에 기필코 지키겠다는 고집이나, 여기에 편승한 부서의 눈치 보기는 결과적으로 시민들을 곤궁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워낙에 어려운 재정여건 앞에서 문화예술을 들먹이는 일조차 조심스럽긴 하다. 그러나 자칫하다가는 가뜩이나 구차한 지역의 문화예술이 더 깊은 수렁에 빠지지나 않을까, 자못 걱정이 크다.

반드시 경제적 조건으로만 시민들의 삶의 질을 한정할 수 없는데도, 아니 문화예술이야말로 국가와 도시, 그리고 시민 개개인의 품격과 행복을 높이는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예산 편성에서 가장 먼저 버려야할 카드로 여전히 문화예술분야를 꼽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이런 상황에서는 문화예술의 창의성이 나올 리가 만무하다. 안정적인 예산 운영이라는 핑계로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문화예술의 특성을 생산성이 없다거나 소모적이라고 함부로 폄훼해서는 곤란하다. 손에 만져지는 것만으로 삶의 풍요를 가늠하는 시기는 오래 전에 지났으며, 지금은 문화와 예술이 도시와 도시에 사는 시민의 자부심이 되어야 한다.

예산부서의 고민을 몰라서가 아니다. 다만 너무 쉽게 정신을 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오직 ‘배부른 돼지’만을 행복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짚어볼 일이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나 도시의 자산은 결코 먹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넓은 도로와 높은 빌딩도 더 이상 도시의 매력이 아니다.

해마다 예산 편성 시기가 되면 지역의 문화예술이 인천의 매력으로 손꼽힐 만큼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든다.

최초라거나 최대라는 수식어에 기댄 행사나 급조한 이벤트가 아닌, 단체장 얼굴을 비치기 위한 행사가 아닌, 인천이 살아왔고 지금 살아가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할 모습들이 인천의 문화와 예술에 투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