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생태역사공간연구소 공동대표

김현석 생태역사공간연구소 공동대표
김현석 생태역사공간연구소 공동대표

인천투데이|여름이 끝날 무렵의 병영 안이었다. 딱히 정비할 곳도 없고 지겹게 반복하던 훈련도 예정되지 않은 날이었다. 이런 날은 부대 주변의 풀을 베거나 산에 가서 싸리나무를 꺾어다가 빗자루를 만드는 일처럼 단순한 작업이 배정되기 마련이었다.

줄만 잘 선다면 상관의 감시망을 벗어나서 일을 할 수 있는 곳에 배치될 수도 있었다.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별 탈 없이 아침점호를 끝냈더니 울타리 주변의 진지를 보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예상한 대로 무난한 일이었다. 진지라고는 해도 높이가 가슴에 닿는 정도였고, 사람들이 자주 접근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파손된 부분도 많지 않았다. 비가 와서 울퉁불퉁한 표면을 평탄하게 만들거나 군데군데 흙이 흘러내려 무너진 곳을 보수하면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함께 배치된 파트너는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말년 병장이었다. 삽 한 자루를 들고 가벼운 기분으로 연병장을 가로질러 울타리에 도착했다. 우리가 작업할 곳은 작은 참호가 있는 나무 그늘 아래였다. 그 위로는 사람 키보다 높은 철조망이 놓여 있고, 철조망 밖은 경사가 크게 가파르지 않은 언덕이 완만하게 이어져 있었다.

풀로 뒤덮인 언덕이 끝나는 곳부터는 민가에서 경작하는 논이 골짜기를 따라 길게 연결돼 있었는데, 가까운 곳에 주상절리를 낀 하천도 흘렀던 탓인지 여름철이면 습기를 머금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곤 했다.

철조망 밖에서 넘어오는 축축한 공기를 맞으면서 한참 참호 주변을 고르며 다지던 중이었다. 언덕 윗부분에 삽을 꽂고 한 무더기의 흙을 움푹 들어낸 순간, 흠칫하며 얼른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한 뼘 정도의 깊이로 파낸 구덩이 속에서 뭔가 작은 것들이 꼼지락거리며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낮은 신음소리라도 냈던지,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옆에서 풀피리를 만들며 쉬고 있던 고참이 상체를 들어 구덩이 안을 들여다보고 두어 걸음 뒤로 뒷걸음질을 쳤다. 흙 속에서 바둥대는 물체의 등에는 검은색 줄이 선명하게 보였다. 말로만 듣던 등줄쥐였다.

유행성출혈열을 발병시키는 한타바이러스의 숙주가 바로 이 작은 생명체였다. 유행성출혈열은 훈련병 때부터 넌더리가 나게 들었던 감염병이었다. 사람끼리 전염되는 건 아니라지만 열 명이 걸리면 한 명은 죽었다. 치사율이 낮지 않은 병이었다.

주로 전방 부근의 군인에게서 많이 발생하는 병이라는데 눈앞에서 바이러스를 옮기는 숙주를 본 건 처음이었다. 이 쥐를 발견하면 상관에게 보고하는 게 원칙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귀찮은 일이 기다릴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그 후 한동안은 몸 상태를 살피면서 혼자 속으로 불안에 떨었지만, 별 탈 없이 그럭저럭 제대를 했다. 사회에 돌아온 후 유행성출혈열은 기억에서 사라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중부전선 인근에서 그렇게 강조되던 감염병을 사회에서는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병원균이 갑자기 사라진 것만 같았다.

사람들의 의문도 여기에서 시작됐다. 유행성출혈열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건 한국전쟁 중인 1951년이었다. 연천군 일대에서 전투를 벌이던 미군들 사이에서 이상한 괴질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곧 UN군 전체로 퍼져나갔다.

생전 처음보는 증상을 파악하기 위해 미국에서 연구진들이 들어와 추적을 한 결과, 과거 만주에 주둔했던 일본군들이 겪은 증상과 유사하다는 걸 알아냈다. 그것이 갑자기 한반도의 한가운데에서 등장한 것이다.

일본군 역시 이 병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이른바 731부대를 비롯한 세균전부대들이 연구를 진행했지만 원인을 알 순 없었다. 일본이 패망한 후 일본 세균전부대의 비밀문서는 미군에 넘어갔고, 그런 이유로 유행성출혈열은 미군의 ‘생물학전 실험’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도 나왔다.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생물학 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힌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군은 2015년 오산 미 공군기지에 살아있는 탄저균을 반입해 실험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소위 ‘주피터 프로그램’으로 한반도에서 생화학전을 구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반도를 생화학 실험실로 활용해 온 미군의 이러한 이력은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심각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실험실 내의 문제라고 치부해버릴 순 없는 문제다. 부평에 있던 미군기지에도 상당한 규모의 의무창(Medical Depot)이 존재했고, 일본군이 쓰던 의료기기와 건물을 그대로 인수한 400병상 규모의 군병원도 운영됐다.

개연성만 존재하더라도 이 안에서 진행된 여러가지 일들을 검증하는 건 식민지와 분단의 흔적을 낙엽처럼 밟고 서 있는 현 세대의 의무이자 과제다. 그리고 그러한 분야는 위생과 의료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일명 CIC라고 부르는 미군방첩대를 비롯한 정보부대의 활동에 관한 정보 역시 여전히 베일에 쌓여 있다. 고엽제라고 부르는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의 처리 문제는 아직도 논쟁중이다. 나무를 심거나 대민지원을 하는 문제도 단순한 업무에 그치진 않았을 것이다.

미군기지의 담장 안에는 그러한 자취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조만간 외형은 우리 것이 될 수 있어도 그 안에 스며있는 조각들을 찾아서 한데 모으지 못하면 그 공간을 온전히 우리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의 눈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나씩 따져보고 쉽게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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