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언 법무법인 위공(여의도‧송도) 대표 변호사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 익숙하지 않은 문어체 단어들이 많이 쓰인다. ‘추앙’이 처음 그랬다. 그게 일상에서 잘 안 쓰이는 단어였기에, 구씨는 인터넷으로 추앙의 뜻을 찾아본다.

박병언 법무법인 위공(송도) 대표 변호사
박병언 법무법인 위공(송도) 대표 변호사

드라마야 보는 사람마다 자기 잣대로 보고 즐기는 것이니 어떻게 감상할지 정답이랄 것은 없다. 염미정이 구씨더러 자신을 추앙하라고 말했을 때, 그가 가진 감정은 ‘혐오’였다. 그는 그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혐오했다.

그 먼 길을 돌고 돌아 출근하면, 염미정은 그가 가장 혐오하는 사람들과 ‘예의 있게’ 함께 해야 했다. 염미정의 팀장은 염미정을 그가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놓고 갈군다. 염미정의 동료 정규직 직원들은 그를 살갑게 대하지만, 정작 괌에 같이 놀러 가는 ‘친밀한’ 일정을 짤 때는 철저히 배제한다.

염미정은 먼 출근길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일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성실히 살아가고 있음에도 공허함을 감출 길이 없다.

이런 구질구질한 관계를 넘어 유일하게 자신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애인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염미정과 그런 친밀함을 이용해 마지막까지 해결할 수도 있는 액수의 돈도 갚지 않는다.

그리하여 염미정은 사람이 너무도 진저리나게 싫다. 하지만 자기 주변에서 스스로를 자해하고 있는 구씨를 그냥 두지 못하고 ‘개입’한다. 사회가 그에게 곁을 주지 말라고 하고 있지만, 정작 그는 누군가와 곁을 주고 진실로 연결돼 있기를 뜨겁게 바란다.

‘개입’한다는 것은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다. 왜냐면 상대방이 잘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염미정이 ‘나를 추앙하라’는 도도함으로 나오자, 그 황당함이 오히려 구씨의 마음을 열게 하는 계기가 된다.

둘째 염창희는 구씨의 숙소에서 소주병을 치우다가 오지랖을 떤다며 구씨에게 깨지게 된다. 누군가에게 개입한다는 것은 그런 예의 없음이 될 개연성을 늘 가지고 있다.

누구나 사회관계망으로 연결돼 있고, 약점을 가지고 있다. 도덕적 약점이 지목돼 ‘폭로’라는 방식으로 사회에서 사냥당하지 않기 위해 주변과 동일한, 안전한 사람인 것처럼 자신을 숨겨야 한다.

그 결과가 누구도 다른 이에게 말 거는 방법을 모르는 채-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애정과 개입의 절차를 거세한 채-모두가 서로 똑같은 상태로 지내는 것이다. 모두가 그렇고 그런 모습이기에, 서로 말할 것도 별로 없고 말하기 쉬운 안전한 틈새로 움츠러들어 있다.

염미정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이 상태다. 자신이 비정규직이라는 것. 지방에서 서울로 출퇴근한다는 사실 등은 염미정에게 자신을 한 번도 위축하게 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이 관계의 공허함, 말의 공허함을 견딜 수 없어 했다.

그래서 구씨와 관계가 깊어지자, 그들은 안에 있는 자신의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서로를 ‘추앙’하는 과정에서 ‘겨울이 지나고 나면 이전보다 다른 상태로 성장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웹툰을 드라마로 만드는 게 유행인 시대다. 나의 해방일지도 원작이 있을까. 이 드라마는 놀라울 정도로 ‘단속사회(엄기호 저, 창비)’라는 책의 주제를 담고 있다. 작가가 이 책을 참조했는지, 우연의 일치 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 글에서 ‘따옴표’로 묶은 단어들은, 모두 단속사회 책에서 저자가 사용한 개념어들이다. 그런 문어체의 개념어를 이렇게 멋진 영상으로 만들어낸 솜씨에 탄복할 뿐이다.

책 단속사회가 지적하는 우리들의 교착상태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목격되는 광경들이다. 엄기호 자신이 그런 평범한 이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말과 언어로 글을 구성하는 학자이기에 당연한 결론이기도 하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그런 상태를 개선하겠다고 자임하는 정치인들 혹은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이런 자기검열과 교착상태가 있지는 않은가 하는 점이다.

‘민주적’ 혹은 ‘진보적’이라는 기준은 형식적으로는 동등한 사람이었더라도 실제로는 말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발언할 자리를 만드는 힘으로 작용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너는 반민주적이다, 혹은 너는 반진보적이다라는 공격의 무기로 사용될 때 민주와 진보라는 잣대는 말을 막는 언어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것을 목격한다.

<나의 해방일지> 마지막 부분에서 염미정은 서로를 ‘환대’하자고 말한다. 서로를 믿어주고,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안전한 만남. 그것이 체제와 사회구조가 개선된 지점에서 사람들이 이루려고 했던 ‘해방’인지도 모르겠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성취를 이루고, 세계 G10 경제대국의 위용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혹 드러날 까봐 자신을 단속하고 관리한다. 말할 수 없던 것을 말할 수 있게 하는 것, 엄기호는 그것이 정치의 본령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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