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언 법무법인 위공(여의도‧송도) 대표 변호사

태권브이는 왜 마징가제트랑 비슷할까. 그야 베꼈으니 그렇다. 물론 법적으로 ‘저작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판결이 있지만, 일본 마징가제트를 따라 만들었다는 점은 판결 이유에서도 인정했다.

박병언 법무법인 위공(송도) 대표 변호사
박병언 법무법인 위공(송도) 대표 변호사

일본 생활상을 보도하는 TV화면을 보다 보면 ‘어 한국 지하철과 똑같다!’라는 탄성이 나온다. 일본 전동차설계를 그대로 들여와 지하철을 건설했으니 똑같은 건 당연하다. 역사적으로 근대화 선발주자인 일본의 성취를 따라 전진한 데다, 한국은 근대화 이후 일본의 성장과정을 후발주자로서 추격해 왔다. 그러므로 “30년 뒤의 한국”을 그려 보자면 30년 전 일본 모습을 살펴보면 매우 유사하다.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일본은 아직도 소위 ‘천황’을 형식상 모시고 있어 천황이 재위기간 선포하는 연호를 사용하고 있다. 아키히토 천황은 1989년은 재위에 올랐다. 2019년까지 30년을 일본에서는 ‘헤이세이(平成)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는 여러 모로 일본에게 있어 각별한 시기다. 우선 1989년 상황을 보자. 그 때 일본은 지금 중국과 같은 지위로 미국을 추월하여 세계 경제를 좌우할 존재로 각광받고 있었다. 1989년 세계 기업의 시가총액 순위를 살펴보면, 상위50개 기업 중에 32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1위 NTT, 2위 일본 흥업은행, 3위 스미모토은행, 4위 후지은행, 5위 제일권업은행을 지나야 비로서 6위로 미국의 IBM이 이름을 내밀 정도였다. 상위 20개 기업 중 15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1위 NTT의 시가 총액만 그 무렵 한국 GNP(국민총생산)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즉, 당시 한국의 경제 수준은 일본 기업 1개의 시가 총액수준에 불과했다.

30년이 지난 2019년 시가 총액 세계 랭킹 1위는 애플, 2위 아마존, 3위 알파벳(구글), 4위 마이크로소프트, 5위 페이스북이 차지했다. 아니 일본기업은? 35위 도요타자동차 뿐이다. 삼성전자는 16위다. 이 몰락의 30년 과정을 일본에서는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부른다.

헤이세이시대 직전, 그러니까 1980년대 일본은 계속되는 경제 성장으로 국민 간 차이가 가장 적었던 시대였다. 1984년 일본 경제기획청 조사에서 일본 국민의 64.2%는 자신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80%가 넘었다. 그런데 이것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변화의 방아쇠는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었다. 일본 정부는 1980년대 말 경제 활성화를 위해 자금과 규제를 풀었다. 산업으로 자금이 재유입 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미 경제적으로 만족감을 느끼던 일본 국민은 이 돈으로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했다. 그 결과 ‘버블경제’가 형성됐다.

버블경제의 붕괴 결과, 자산을 이미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격차가 확대됐다. 1989년 무렵 까지는 경제적인 격차가 있다고 해도 미래에 작아질 거라고 믿을 수 있었다. 그러나 버블붕괴 이후 사람들은 미래에도 격차가 줄어들기는커녕 확대될 것 같다고 깨닫기 시작했다.

버블이 붕괴하고, 정보화나 세계화의 진행에 의한 경제구조 변동 속에서 대기업과 공공기관 등 비교적 높은 지위나 전문직에 해당한 직종은 여전히 보호를 받았다. 반면, 그 악영향은 청년층이나 주변적인 노동자에게 집중됐다.

생활이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을 상실한 청년들은 아르바이트 같은 떠도는 직업에 만족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며 자신을 기만했다. 그렇지 않으면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일에 과도하게 집착했다. 현실 사회관계에서 존재가치를 입증하지 못해 인터넷상에서 최후의 안식처를 구한 것이다. 이른바 "언더클래스"의 출현이다.

이들은 전통적 의미의 하층계급, 노동자계급, 빈민이나 프롤레타리아와 다른 존재들이다. 세계화하는 경제구조 속에서, 고도화된 정보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새로운 ‘주변적 계급’이다. 이들의 평균 개인 연수입은 1769만원(월급 147만원). 남성은 약 3분의 2가 미혼이다.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는 사람은 13.8%에 불과했다. 즉, 이들 ‘언더클래스’ 남성들은 자신의 처지에 매우 불만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일본 내 이 같은 경제적 불평등 확산으로, 30대 전반에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고도성장기에 흔했던 핵가족 모델은 1990년대 들어 파탄했다. 25~29세 남성 중 정규직은 31.7%가 결혼하지만 비정규직은 13%만 결혼했다. 30~34세가 되면 정규직은 57.8%가 결혼했지만 비정규직은 23.3%만 결혼했다. 이렇게 일본의 출산율은 2005년 1.26이라는 ‘파멸적인’ 수준에 이르렀다.(이상, 책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중)

한국의 2021년 출산율은 0.81이다. 위 책을 썼던 저자가 “파멸적인”수준이라고 표현했던 수치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이며, 이미 인구 정책적으로 파탄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G10가입과 경제성장이라는 성취에 취해 국내 불평등을 완화할 정책수립에 실패 한다면, 30년 뒤 한국의 미래는 바로 옆 나라에서 진행된 ‘보통국가로의 전락’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7세 입학을 추진해 국민이 빨리 학업을 마치고 1년이라도 빨리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게 하겠다는 식의 정부 정책 입안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지금 정부에서 이 중요한 시기를 헤쳐나 갈 정책을 기대할 수 있기나 한 것인지 심히 불안하다. 늘, 한국에선 정부가 안하고 있어 국민이 피곤하게 일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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