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주 인천여성회 정책국장
텔레비전 뉴스 보기가 싫어진 지는 오래되었다. 요즘은 보기 싫은 정도를 지나쳐 무섭기까지 하다. 요즘 뉴스는 소식을 전하는 보도라기보다는 일종의 협박에 가깝다.

지난 8월 말 태풍 ‘볼라벤’과 ‘덴빈’이 연달아 상륙했을 때, 아니 상륙하기도 한참 전부터 방송사들은 이번 태풍이 얼마나 끔직한 사태를 몰고 올 것인가 경주하듯 보도했다. 결국 태풍이 상륙하자 앞 다투어 기자들을 광풍이 몰아치는 현장으로 내몰았고, 기자들은 바람에 허리가 꺾이며 태풍의 강도가 얼마나 심한지 온몸으로 보도해야했다.

방송사는 무엇을 바라고 기자들을 허리가 꺾이는, 까딱 잘못하다가는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광풍 속으로 내몬 것일까? 재난 방송이라면 모름지기 다가올 재해의 정도를 예측하며 시청자들이 어떤 대비를 할 것인지 주지시키고, 국가 차원에서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지를 보도함으로써 위기에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번 태풍 보도에서 그런 재난 방송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기자들을 스턴트맨 삼아 불안감을 부추겼다. 방송을 보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침수 피해 걱정 없고 광풍에도 끄떡 않는 좋은 동네 좋은 집에 살지 않는 이상, 태풍이 오면 꼼짝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다’는 당혹스러운 깨달음뿐이었다.

태풍 보도와 더불어 요즘 뉴스를 요란스레 채우고 있는 것은 아동성폭력 기사다. 화면을 보지 않고 기자의 목소리만 들어도 끔찍함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소름끼치는 보도를 매 시간 반복하는 뉴스를 보다가 이쯤 되면 고문이다 싶어 결국, 텔레비전을 끄고 말았다.

유독 요즘 들어 이런 흉흉한 범죄가 많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성폭력 범죄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남자들의 참을 수 없는 성적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권력관계의 불평등에 따른 범죄이므로, 불평등이 극도로 심화된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드러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방송 보도에 이런 심도 깊은 원인 분석 따윈 없다. 포르노 운운하는 하나마나 한 이유 달기만 있을 뿐이다. 태풍 보도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해야 이러한 범죄를 줄일 수 있는지 진지한 논의도 없다. 누가 누가 더 자극적인가 내기라도 하듯, ‘좀 더 세게, 좀 더 많이’ 보도하는 방송사들의 경쟁이 있을 뿐이다.

아동성폭력 범죄를 비롯한 흉악 범죄 보도를 보며 우리는 생각한다. “잠자고 있는 아이를 이불 채로 들고 나가 범죄를 저지를 정도라면 나를, 나의 아이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한숨 섞인 탄식 뒤로 최근 경호업체와 보안업체가 대박이 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거기에 뜬금없이 대통령이 나서서 사죄 방송을 한다. 아니, 특별히 수사를 잘못해서 사건이 발생한 것도 아닌데 대통령이 왜 사죄를 하는 걸까? 임기 말년이라고 ‘쇼’하는 건가, 하는 삐딱한 생각부터 든다. 지금 국가가 할 일은 밑도 끝도 없는 사죄가 아니라 정확한 원인 분석과 그에 따른 대책이다. 불안해하는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정책이다.

자연재해도 흉악 범죄도, 누구나 피하고 싶은 재난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제도적 차원에서 최대한 막고자하는 것이다. 그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이지 않은가.

그러나 요즘은 그저 협박만 한다. 강도 높은 협박 속에 자연재해든 흉악 범죄든 사회적 위험들은 개인들이 알아서 대처할 그 무엇이 되고 만다. 자연재해에도 끄떡없는 집과 일터를 가진 개인, 경호업체와 보안업체에 개인과 가족의 안전을 맡길 만큼 경제력이 되는 개인이 아닌 이상, 불안과 공포 속에서 떠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도대체 이게 사는 건가? 협박만 일삼는 국가, 도대체 존재할 필요가 있긴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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