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생태역사공간연구소 공동대표

모든 유행은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전파된다. 계층 간 이동은 물론, 국가에서 국가로 전파되기도 하고, 사회집단 사이에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한다.

김현석 
김현석 

유행이 전파될 때는 그것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 본질적 개념이 함께 옮겨지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유행의 성장을 이끈 뿌리보다 겉으로 드러난 외형만 따온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최근 유행을 타고 있는 ‘도시바람길 숲’ 조성 사업은 독일에서 유래한 ‘바람길’을 모방한 것인데, 바람길 대신 숲에 방점이 찍혀 도심에 나무를 심거나 기존 가로수를 정비하는 것이 시대의 의무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독일이 ‘바람길’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진행된 데다가 지역 환경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한 기초 위에서 건물의 층수나 간격, 심지어 방향까지도 제한한다던가, 혹은 승용차 중심의 교통 정책에 변화를 준다던가, 그런 새로운 시도들을 함께 해 나가면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달리 말해 ‘바람길’이란 단어는 도시계획에 관한 철학과 원칙을 전면적으로 재정립함으로써 유행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중에서 도심에 식재를 해야 한다는 한 부분만 받아들여 정책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인천의 어떤 지역에서는 도심 속 산을 방벽처럼 가로막는 모습으로 아파트 공사가 한창인데, 그 옆에서는 바람길 숲을 만든다고 인근 녹지를 파헤치는 이상한 현상도 목격된다. 이런 것을 보면, 차라리 유행에 뒤쳐지는 게 유행을 섣불리 좇는 것보다 나은 것 같다.

언제부턴가 관광의 한 형태로 회자되는 다크투어리즘 역시 섣부른 유행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다크투어리즘은 끔찍한 재난이나 비극적 사건의 현장을 둘러보는 여행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홀로코스트 현장이나 9.11테러로 무너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조성한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같은 곳들이 주로 대상이 된다. 국내에선 제주4.3평화공원이 다크투어리즘의 대표적인 공간으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여행에는 고통과 죽음이란 관념이 필연적으로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여가를 즐기기 위한 기존의 관광과 달리 다크투어리즘 형태의 여행은 피해자들이 당시 감정을 체험하게 이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건의 정황을 배우며 반성과 교훈을 얻게 유도한다.

이와 같은 특성 탓에 관광객들은 감정의 폭주를 경험할 수도 있다. 따라서 현장에는 그러한 심리 상태를 배려한 잘 짜인 이야기 줄거리가 마련돼 있어야 한다. 다크투어리즘이 단순히 유적을 드러내 보여주는 곳보다 박물관이나 기념공원처럼 계획된 안내소가 함께 조성된 곳을 주요한 대상으로 삼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간혹 ‘다크투어’란 유행어만 빌려오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런 경우에는 ‘어두운 역사’를 보여준다는 명목 하에 방문객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새로운 것을 찾는 관광객의 욕구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잔인한 범죄 현장이나 난민촌 같은 곳들도 ‘다크투어’란 명분 아래 관광지로 전락할 수 있다. 혹은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처럼 포로들의 생활을 희화화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어두운 역사’란 상대적인 것이다. 피해자가 있으면 가해자가 있기 마련이고, 가해자가 처했던 현실 또한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다크투어리즘은 사건의 현상을 떠나서 국가와 사회와 체제의 문제까지 거슬러 따져보는 투어가 되어야 한다.

더구나 다크투어리즘은 경우에 따라 폭력으로 작동될 우려도 있다. 다크투어리즘이 관광지로 대상화한 지역은 주민들의 생활공간일 수 있고, 이들은 자신들의 공간이 ‘어두운 역사’의 현장으로 주목 받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지 주민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일은 사전에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인천에서도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의 역사를 토대로 다크투어리즘의 열기가 피어오르는 중이다. 하지만 호기심을 채우는 것 이외에 다크투어리즘의 본의에 다가서려는 시도를 본 적이 없다. 이러한 실태라면 또 다시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을 때 이름만 바뀐 투어프로그램이 똑같은 스토리를 갖고서 한없이 재생될 것이다.

유행은 한철이다. 수입된 개념을 그대로 맹신할 게 아니라 그것을 철저하게 지역의 콘텐츠로, 지역화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 현실에 맞는 반성과 교훈을 얻을 수 있게 진정성이 긴 투어프로그램을 완성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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