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인천투데이|“부유한 나라들이 파키스탄에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화석 연료 배출이 파키스탄에 한 일은 어떤 전쟁보다도 더 나쁩니다. 파괴적인 더위에서 재앙적인 홍수에 이르기까지, 북반부 국가들의 경제적 성장에 대한 욕망 때문에 파키스탄은 점점 더 그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한 파키스탄인의 트윗이다(이송희일 감독 번역, 페이스북 게시글). 파키스탄에는 3개월째 이어지는 큰 비가 내리고 있다. 8월 29일 기준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숨졌고, 그중 35%가 어린이다.

파키스탄 사람들이 일상을 사는 터전의 3분의 1이 넘는 땅이 물에 잠겼고 집 50만채 이상이 돌아갈 수 없게 됐다. 그리고 이재민 3300만여명이 발생했고, 그보다 많은 비인간 동물들의 피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제대로 된 집계조차 없다.

가난한 파키스탄은 기후재난을 마주하며, 이재민의 대피소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파키스탄이 홍수 피해를 어떻게든 수습한다고 하더라도 식량 위기가 이어진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많은 농작물이 물에 휩쓸렸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기후 대참극’을 맞았다고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며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뉴스 한 줄로 소비되고 끝나버리는 이 비극은 과연 나와 상관없는 어느 ‘가난한 나라’의 일일 뿐일까.

지난 달 한국에서도 폭우로 사망자 13명, 실종 6명, 이재민 1285명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고도 며칠만 지나면 마치 ‘없었던 일’처럼 기억에서 사라진다.

심지어 정치인의 기억에서도 그렇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반지하 참사가 일어난 마을을 찾아 ‘비가 더 왔으면 좋겠다’는 실언을 했다.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불운한 일’ 혹은 ‘불쌍한 사람들의 일’ 그래서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그저 ‘날씨가 좀 나쁜 날도 있고 좋은 날도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기후 위기가 위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은 어쩌면 ‘운이 좋아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아직까지 큰 피해를 겪지 않고 있지만, 이는 또 어쩌면 ‘운이 없게도’ 기후위기를 실감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이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서 코앞에 다가와 있는 위기를 위기라고 느끼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유일한 기후위기 대책은 핵발전소다. 아직 세계적으로 성공한 적도 없고 현실화 가능성도 크지 않은 ‘핵폐기물 처리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레이트 선셋 한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번에도 기록적인 폭우로 한강변의 시설들이 모두 처참하게 물에 잠겼지만, 앞으로 잦아질 기후재난을 마주하면서도 물에 잠기지 않게 추가 비용을 지불하며 기어이 대규모 토목공사를 진행한다고 한다.

최고 규모의 대관람차, 수변 객석을 갖춘 수상예술무대, 싱가폴에 있는 슈퍼트리 등을 만들어 강남과 강북을 한강 중심으로 지그재그로 이어가며 야경과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관광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송도신도시에 국내 최고층 빌딩을 지어야한다는 일부 목소리가 있다. 송도신도시는 매립지 위에 세워진 도시로 파도와 태풍 등의 자연재해에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해수면 높이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성장은 계속하면서도 기후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은 우리를 그렇게 믿게 만들고 싶어한다. 조금이라도 더 이 상태를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성장 중독의 자본주의 사회는 지구를 되돌릴 수 없는 자정능력을 잃는 상태로 몰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과학자와 전문가가 예측했듯, 인류가 멸종할 수 있는 기후위기의 상황을 마주했다.

상반되는 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수는 없다. 이젠 성장 중독의 자본주의 사회를 끝내고 분배, 평등, 생명 중심의 탈성장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폭우와 폭염 등의 기후재난은 계속 발생할 것이고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기후 전문가들은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다면, 동시에 지구가 자정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가는 것만은 막기 위해서라도 적응해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걸 ‘기후탄력성’이라고 한다.

기후탄력성은 기후변화로 인해 더욱 잦아질 폭우, 폭염, 가뭄, 산불 등의 자연재해 속에서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대처를 말한다. 이미 회복은 불가능하니 고통과 피해를 최소화하며 적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혹시 아직도 기후위기가 위기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기후위기를 시급한 일로 느끼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노력을 해서라도 느껴야 한다. 우리가 무관심하고 무지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방해를 뚫고 느껴야 한다. 진실을 알아야 한다. 현실을 마주하자. 그리고 제대로 된 대책을 국가에 요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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