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강 마중물 청년회원
지난 몇 년간 나의 대학후배 몇 명은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그들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슬픔의 위로도 있었지만, 질책의 언어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나약하고 우울증에 걸린 20대들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나를 아직도 매우 불편하게 만든다.

내 후배들은 지원하는 회사마다 줄줄이 낙방했다. 생활비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언제나 아르바이트를 했기에 대학생활을 한 번도 즐기지 못했다.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에 취업한 후에는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야근을 자원하던 후배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려고 했는지를 안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그들이 살아가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떤 두려움을 안고 있었을까?’ 그리고 ‘어떤 소망을 가지고 살았을까?’ 심각하게 묻기 시작했다.

성공신화와 강자의 이익

우리의 10대엔 많은 꿈들이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매번 바뀌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은 학교에서 더 이상 꿈을 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학교는, 학생의 의무가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이며, 이를 위해서는 입시지옥을 견뎌야한다는 것을 가르쳤다. 모두들 성공을 위한 질주를 시작했다. 이탈하는 아이들은 문제아, 실패자 등으로 낙인이 찍혔다.

겨우 지옥에서 살아남은 우리를, 또 다른 두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시절 내내 생존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공포가 엄습했다. 등록금과 생활비가 짓누르는 압력을 견뎌야했다. 일류대학이 아니었기에 더 나은 스펙으로 나를 준비해야한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미래에 대한 이 두려움들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계발을 위한 스펙 쌓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제 성공은 대기업 정규직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등록금 융자 원금도 갚아야했고, 결혼도 해야 했으며, 이를 위해 돈과 집을 마련해야했다. 목표는 분명했다. 삶에 대한 내적 성찰과 동료들과의 토론과 나눔 없이 그저 이 불확실한 목표를 향해 열심히 내달렸다. 하지만….

이 사회 속에 상식은 성공이다. 성공은 분명한 지표를 갖고 평가된다. 좋은 대학을 가야하고 좋은 직장을 얻어야한다. 내 후배들은 성공신화라는 상식의 야만적인 바람들이 흔들어 놓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걸어왔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면서 두려움이 가득 차올라 주저앉고 말았던 것이다. 이들이 본 세상은 강자만의 이익이 보장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사회가 아니었을까?

절망하는 사회와 소망하는 정치

독일의 한 철학자는 현대사회를 ‘피로사회’로 규정했다. 이것은 ‘넌 할 수 있어’라는 상식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성과사회’와 동전의 양면이다. 성과사회는 끊임없이 개인 스스로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불어넣는다. 결국 권력이 아니라 개인 스스로가 스스로를 착취하는 상태가 되고, 그 결과 개인들은 고독한 피로를 느낀다. 이제 성과를 얻지 못한 것은 개인의 긍정성과 노력의 부족 때문에 발생한 것이 된다. 이처럼 피로사회는 자기 자신에 대한 착취사회를 의미한다.

피로사회에서는 성공과 성과를 상식으로 받아들인다. 이 사회에서는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질주해야하고 탈락이나 패배는 오롯이 개인의 책임이다. 따라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성과를 위해 몰아넣는다. 이제 극단적인 피로와 탈진사태를 야기하고 집단적인 신경증 질환에 걸린다. 그런데도 피로의 원인은 개인에게 있다.

내 후배들은 피로사회 속에서 발버둥을 쳤을 것이다. 그들은 항상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고 뭐든지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피로사회는 열심히 살수록 더 피로하다. 후배들은 자신을 더 열심히, 즉 자기를 더 착취하지 못한 것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진단했을 것이다. 항상 죄책감에 있었을 것이다.

만약 이들이 피로사회라는 굴레에 있지 않았다면, 이들이 자신들의 신경증과 작은 성과가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피로사회의 성과가 아닌 다른 삶을 소망할 수 있는 거처를 상상했다면 성공을 위한 경쟁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숨을 가다듬고 문제의 원인이 피로사회 그 자체라는 것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마중물칼럼’은 사단법인 ‘마중물’ 회원들이 ‘상식의 전복과 정치의 회복’을 주제로 토론하고 작성한 칼럼입니다. 격주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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