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인천청년광장 대표

이정은 인천청년광장 대표
이정은 인천청년광장 대표

인천투데이|한 전철역 앞 거리에 45인승 버스 2대가 멈춰 선다. 제각기 흩어져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버스에 올라탄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도착한 대형 물류센터 앞에는 이미 다른 버스들이 도착해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대형 사무실 접수대에서 출석체크를 하고 조금 기다리면 섭씨 4도의 냉장창고에서 각자 맡은 업무가 시작된다.

국내 곳곳에서 올라오는 식품들이 잘 왔는지 검수하고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일, 식품을 주문서에 맞게 바구니에 담는 일, 레일을 따라 내려오는 식품이 담긴 박스를 포장대에 옮기는 일, 신선식품을 아이스팩, 포장재에 담아 포장하는 일까지 각 공정에 따라 박스가 만들어진다.

배송기사들이 자신의 트럭에 이 박스를 싣고 새벽 동안 배달하면 다음날 아침, 스마트폰으로 주문한 식품이 우리들의 집 앞 현관에 도착해있다.

신선식품을 바로 다음 날 새벽에 받아볼 수 있다는 한 신선식품 회사의 물류센터에서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일이다.

자취를 하며 마트에서 소량의 신선식품을 구매하기 어려워, 이 회사에서 식품을 구매하며 편리함을 느끼는 소비자였던 나는 지난 며칠간 이 회사 물류센터의 냉장창고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상황이 지속되면서 배달, 물류가 크게 늘었다. 이른바 로켓배송, 새벽배송 등을 내세우는 일부 물류회사들은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배달기사들의 과로사 문제가 불거졌다.

코로나 이전부터 과로사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에 뉴스에 배달기사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게다가 물류센터 내 집단감염, 센터 내 노동자 과로사 사태도 불거지기 시작했다. 2021년 사망한 쿠팡 대구물류센터 노동자는 하루 평균 무게 5kg 박스를 최대 100번 나르고 최고기온 30도 이상의 열대야에서 냉방시설 하나 없이 밤샘 야간작업을 했다.

왜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이러한 과도한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내가 일한 곳은 섭씨 4도의 냉장창고였기 때문에 무더운 여름에 오히려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거대한 센터 내부를 쉼 없이 걸어 다니거나, 레일에서 밀려오는 박스를 제시간에 작업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일하는 중간에는 10초도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일 자체도 과중한데, 그날그날의 주문량에 따라 최소 인원의 노동자만을 선발한다. 일용직으로 일하는 동안 드문드문 일할 수밖에 없었는데 물량이 적은 날이면 지원을 하고 나서도 출근하기 2~3시간 전에 출근하지 말라는 문자를 받는다.

혹여 몸이 아프거나 일이 생겨 출근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업무 배치에서 밀려나 점점 더 일하기 어렵게 된다. 결국, 내가 원하는 날에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정말로 원하는 때에만 일할 수는 없다.

물류센터의 물량은 일정하지 않다. 더욱이 무조건 익일배송을 내세우는 곳은 매일매일 물량이 다르다. 그때마다 탄력적으로 노동자를 쓰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활용하는 것이 용이하다.

하루하루 고용하고 하루하루 자르는 시스템이라고 해야 할까. 코로나 이후 만들어진 비대면 사회 시스템은 대면과 접촉이 필수적인 물류, 배달 노동자의 급증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그리고 이들은 스마트폰 앱 속의 주문량에 따라 삶이 결정되고 있다. 과로에 시달리거나, 아예 일이 없거나.

쿠팡 본사 앞에서는 40일이 넘게 폭염 속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요구사항은 유급 휴게시간 보장, 냉방시설 설치, 방한용품 지급이다. 쉬는 시간 보장을 해달라는 요구, 무더운 날 에어컨을 틀어달라는 요구가 본사 앞에서 몇십일씩 농성해야 하는 요구사항이라는 것에 씁쓸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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