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 전 국립외교원 원장 인천 초청 강연 1편
"한국, 미중 패권 충돌 대리전에 휘말려선 안돼"
“‘자동문 외교’ 멈추고 대외 외교전략 유연화 필요”
“한반도 평화공존 전략으로 패권국 대리전 막아야”

인천투데이=김지문 기자 | “결국은 한반도다. 미국과 중국은 직접 충돌하기보다 경제·이권 대리전을 벌이며 갈등을 다른 지역에 전가하고 싶어한다. 한반도의 분단구조는 중미가 이런 갈등 전가하는 데 최적화된 공간을 제공하고 말았다 ”

인천평화복지연대와 인천겨레하나는 지난 21일 오후 7시 인천사회복지회관에서 한동대 김준형 교수(전 국립외교원 원장)를 초청해 ‘분쟁의 세계와 새 정부의 등장, 한반도 평화의 해법’을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

지난 21일 김준형 교수가 인천사회복지관에서 '한반도 평화해법' 강연을 진행중이다.
지난 21일 김준형 교수가 인천사회복지관에서 '한반도 평화해법' 강연을 진행중이다.

“미중 대립 ‘신냉전’과 달라...무역관계 얽혀 다변화”

김준형 교수는 국립외교원 원장, 한반도평화포럼 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2021년 3월 저서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을 저술했다.

중국과 미국, 미국과 중국 양강 패권구도 속에서 미국과 중국을 모두 최대 수출국으로 둔 한국의 외교전략은 위기를 맞이했다. 김준형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을 단순히 ‘신냉전’ 관점으로 해석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지난 2020년 미국의 명목 국가총생산(GDP)은 20조9300억달러였다. 같은 시기 중국의 GDP는 14조7300억달러였다. 중국이 미국을 70%정도까지 따라잡은 상황이다.

중국은 성장한 경제규모를 바탕으로 미국의 전통 동맹국이던 EU(유럽연합)의 최대 교역국이 됐다.

2021년 EU 통계기구 유로스타트(Eurostat) 발표 자료를 보면 2020년 중국과 EU의 교역액은 5860억유로였다. 이는 미국과 EU의 교역액 5550억유로보다 300억유로 이상 많은 금액이다.

김 교수는 "미국의 우방국 대부분이 중국과 쉽게 뗄 수 없는 경제 관계를 맺고 있다”며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 경제블록과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경제블록이 양극으로 나뉘었던 과거 냉전 시기처럼 현 국제 정세를 신냉전 시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독일, 프랑스 등 미국의 전통 우방국들도 최대 무역국이 중국인 상황이라 신냉전이라는 개념은 쉽게 성립되지 않는다.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가 중국과 미국 양국과 교역하고 있다"며 "한국은 이러한 제3지대와 함께 국가 이익을 지킬 수 있는 유연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중국에 의존도가 높은 신소재 디커플링(경제 비동조)을 위해 한국·타이완·일본에 ‘칩4동맹(chip4, 반도체·배터리·바이오·희소물질)’을 제안하는 등 새로운 신소재 공급망을 찾고 있다.

또한 미국은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를 구축해 대 중국 전략적 포위망을 좁히고 있다.

이 상황에서 반도체·배터리·바이오 산업에 강세를 보이는 한국은 이들 산업을 대외 협상카드로 삼아 충분히 유연한 외교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김 교수는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가입하는 건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 가입해서 해당 기구 내에서 중국을 포위하는 방침이 나올 경우 해당 방침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처신하는 유연한 외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중 패권 분쟁 속 한반도는 최적의 대리전 장소"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 ▲센가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타이완 양안관계 ▲남중국해 등 크게 네가지 단층 선에서 갈등 구조를 안고 있다.

김준형 교수는 이중 한반도가 중미 간 가장 큰 대리전 장소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 타 지역은 영토 분쟁이 무력 충돌로 확전할 경우 미중 양국 모두 직접적으로 막심한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갈등이 관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반면 한반도는 미국, 중국 양쪽에 모두 높은 무역의존도를 가지고 있으며 미중 간 직접 무력충돌 가능성이 적은 장소다.

김 교수는 한국이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중국 포위망에 적극 동참하길 원하는 미국과 한반도 갈등 단층을 뚫고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중국 사이의 갈등 속에서 어느 한쪽의 편만을 들다간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미국은 염가의 중국 공산품으로 간신히 물가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과 사실상 (경제) 디커플링이 어렵다. 그렇기에 미국은 일종의 경제 대리전으로 한국에 중국 제품 디커플링을 요구한다. 그게 칩4동맹이다"고 설명했다. 

그런 뒤 "그런데 칩4 만큼은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물론 기업비밀까지 걸린 문제라 신중해야 한다"며 “미국은 미국 경제에 충격이 가지 않는 선에서 중국과 대결하기 위해 양국의 갈등을 한국에 전가하고 있다. IPEF에 가입하더라도 칩4만큼은 안된다”고 부연했다.

"한국도 인도처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김 교수는 강대국 대리전 양상에 휘말리지 않는 외교 전략 사례로 인도의 외교를 들었다.

인도는 카슈미르 지역을 놓고 중국과 국경 분쟁 상태에 있다. 하지만 인도는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음에도 쿼드(미국 주도 호주, 인도, 일본 4개국 안보회담)엔 미온하게 참여하는 등 미중 갈등의 대리전에 참가하지 않고 있다. 

아울러 인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기간 중 미국이 요구하는 대러 제재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을 때 러시아로부터 원유를 35달러 수준에 구입하는 등 이익을 챙겼다.  

김준형 교수는 “인도는 친미국가 중 인구와 경제규모 등에서 중국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국가로 평가 받는다. 인도 또한 이를 알기에 유연한 외교정책의 카드로 사용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지난 지난 5월 21일 쿼드 가입 시도, 6월 29일 스페인 나토 회의 참가 등 미국 주도 대 중국 포위망에 적극 참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별다른 소득도 없다.

김 교수는 “윤석열 정부는 미중 패권 분쟁 속 미국 주도 반중국 동맹의 선봉장을 자처하지만, 정작 한미 통화스와프 복원 실패 등 실익을 챙기지 못하는 '자동문 외교'를 하고 있다”며 “현재 구도는 미중 어느 한쪽에 급격히 접근하는 순간 오히려 대리전의 타겟이 된다.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에 가입하더라도 중국 제재엔 미온적으로 대하면서, 유연한 실리 외교로 한국의 실익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경제보단 체제 안정 중요시...핵무기 감축은 단계적으로”

현재 미국은 북미 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북 전략으로 ‘선 핵포기, 후 보상’을 지속하고 있다. 반대로 북한은 미국에 ‘선 신뢰 확인 후 비핵화’ 계획을 주장하고 있다.

2019년 2월 27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의견 차이를 확인했다.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은 회담 결렬 후 기자회견에서 “핵포기는 단순 영변 핵시설 폐쇄를 의미하는 게 아닌 모든 핵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비가역적 핵포기(CVID) 를 강조했다.

반면 북한 리용호 외무상은 “2016년부터 2017년 사이 발효된 유엔 대북 제재 결의 총 5건 가운데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제재안 일부를 해제한다면 단계별로 핵무장을 포기하겠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현재 한미 양국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에 관심이 없음을 비판했다. 아무런 대안 없는 선제 북한 비핵화 계획 관철은 단순한 정치적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김 교수는 “북한을 협상의 대상으로 보지 않을 필요는 없다”며 “북한이 핵시설, 핵무기를 감축할 때마다 안보 위협, 대북제재를 경감해 줄 것이라는 신뢰를 쌓아 최종 비핵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미중 분쟁 악화 속에서 한반도에 평화공존 체계를 구축해 패권국들이 한반도에서 군사·경제 대리전을 벌이지 않을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또한 '평화는 강압과 굴복이 아닌 자제와 타협의 산물'이라는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의 저술을 인용해 대결 구도를 넘어선 평화적인 외교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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