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강 등의 녹조현상이 언론 보도를 장식할 때의 일이다. “엄마, 큰일 났어요! 낙동강이 초록색으로 변했대요” ‘적조 비상’이라는 내용의 뉴스를 보던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이 소리쳤다.

여름휴가로 낙동강이 휘감고 돌아나가는 안동 하회마을에 다녀온 다음 날이라서 아이는 낯익은 ‘낙동강’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물이 위험하대요. 수돗물에도 독이 생긴대요. 어떻게 해요. 우리 이제 물 못 마셔요?” 설거지를 하고 있는 싱크대까지 다급하게 와서 걱정을 늘어놓는 아이에게 난 아무 대답도 못했다.

우리 집은 수돗물을 끓여 보리차ㆍ옥수수차ㆍ둥글레차ㆍ오곡차를 마신다. 두 아이를 키울 때도 매번 수돗물을 끓여 분유를 탔다. 모든 요리에 수돗물을 이용한다. 폭염이었던 올 여름은 매일 가스레인지에 주전자를 올려 2리터씩 물을 끓였고, 얼음은 다섯 판씩 얼렸다. 끓여서 식힌 물이 모자랄 땐 얼음판에 수돗물을 바로 받아 얼리기도 했다. 수돗물은 이렇게 우리 가족에게는 뗄 수 없는 ‘마실 물’이다.

그러나 결혼 13년간 수돗물을 끓여 마신 우리 가족은, 가전필수품이 된 정수기 물과 깨끗한 생수를 마시는 내 이웃들 앞에서는 ‘용감한 녀석들’일 뿐이었다. 이웃들은 수돗물에 대해 나를 계몽이라도 할 듯이 말한다. “수돗물, 끓여 먹어도 소용없어. 그걸 믿어?”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행사에서는 종종 안심하고 마셔도 된다는 서울의 수돗물인 아리수와 인천의 미추홀참물을 물병에 담아 무료로 나눠주지만, 그걸 마시는 시민은 많지 않다. 수돗물을 그냥 마시기엔 꺼림칙하다. 공신력 있는 수돗물 평가기관에 의뢰해 바로 마셔도 되는 물로 적합판정을 받았더라도, 언제부터인가 깨진 신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웃들은 매달 물 값을 따로 지불하고서라도 정수기를 들여놓거나 지하암반수로 만든 생수를 사서 먹는다. 돈이 들더라도 수돗물보다 깨끗한 물을 마시겠다는, 건강을 위하겠다는 본능적 의지다.

하지만, 정수기는 걸핏하면 필터기능 과대 광고와 위생관리 불량 등으로 소비자들을 분노하게 한다. 지하수도 매장량의 한계와 정수처리, 구제역 여파 때 가축을 매몰한 지역의 오염으로 꺼림직한 건 마찬가지다. 이래저래 꺼림칙한 것 중에 우리 가족은 수돗물을 끓여 먹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수돗물을 믿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다른 물도 믿지 못해서였다.

이틀 뒤 한강의 녹조 비상에 이르자, 아이는 더욱 조바심을 내며 “우리 이제 물 못 마셔요?”라고 걱정했다. 아이는 초록 강물이 독극물처럼 변할까봐 무섭다고도 했다.

서울시와 김포시는 수질관리 비상체제에 돌입하며 악취와 맛, 배앓이, 변색을 신고하는 민원에 “인체에 해로운 독성물질은 없으며 3분간 끓여 마시면 안심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나는 내 아이에게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녹색 괴물이 된 강물로 만든 수돗물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끓여먹으면 된다는 대답은 아이의 걱정을 덜어주기에 부족하다. 아이가 “엄마는 그걸 어떻게 믿어?”라고 되묻는다면, 난 또 뭐라고 대답해야할까?

아니, 이제는 내가 못 믿겠다. 녹조 현상은 ‘딴 이유 없이’ 폭염으로 인한 자연현상이었으므로 세계적인 기술을 발휘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수돗물로 복원했다는 정부 발표가 ‘참’이더라도, 내 마음은 안심할 수 없으므로 아홉 살과 갓 돌 지난 두 아들이 마실 건강한 물을, 새로운 물을 찾아 흔들리고 있다.

아침에 수돗물을 끓이다말고 정수기 대여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내 모습을 보고 남편도 더 이상 끓인 보리차를 고집하지 않았다.

하회마을에서 우리가 묵었던 하남재 고택 주인어른께서도 낙동강 물이 좋아서 수돗물을 바로 마신다고 하셨는데, 녹조 현상을 걱정하시다가 고택에 정수기를 설치하실지도 모를 일이다.

/이경애‧청천동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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