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석 인하대박물관 학예연구사
한국인과 한국인이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아마도 한국어라는 언어일 거다.

이런 일화가 있다. 일본에서 관동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으려했던 일본인들은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주고엔 고짓센(15엔 50전)’을 말하도록 시켰다고 한다. 정확히 따라하면 무사할 수 있었지만, 탁음을 발음하는 데 미숙한 조선인의 경우 그대로 끌려가 죽창 세례를 맞고 목숨을 잃어야했다.

어느 민족, 어느 나라 사람이든 간에 같은 언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는, 상대방과 나와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절차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언어는 사람이나 지역에 따라서 사용하는 습관이 다른데다가, 끊임없이 새로운 어휘가 만들어지고 사라지기도 하면서 변화를 겪는다. 때문에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의사소통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한번 무너진 언어 습관을 다시 회복하는 일도 쉽지는 않다.

이런 일들을 막기 위해서는 한국어의 자원을 수집해서 정리하고 이를 기초로 올바른 공공언어를 가꾸어갈 필요가 있는데, 이러한 작업을 하는 곳이 국립국어원이고, 그 결과물로 만든 것이 ‘표준국어대사전’이다. 만일 한국인이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다면 이 책을 우선 들춰보면 된다.

한국어가 한국인의 뼈대를 형성하고 있다면, 여기에 살을 붙이는 것이 한국문화다. 한국문화에 대해서는 여러 곳에서 정리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다. 지금은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10여 년간의 작업을 거쳐 1990년대 초에 발간한 책이다.

각계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한민족’이 쌓아온 문화적 발자취를 집대성해보려고 시도한 결과물이어서 항목만 읽어봐도 한국문화의 큰 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한국학을 공부하려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봐야 할 필독서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위에서 언급한 사전들은 지금까지의 흔적과 업적들을 집대성하는 데에만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 아름답고 효율적인 언어, 더 창조적인 문화를 가꾸어 가기 위한 기초 작업일 뿐이다. 그래서 무엇을 정리했는가보다 앞으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에 더 큰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

중앙정부에서 추진해 온 이러한 작업들을 염두에 두고 지역에 눈을 돌려 보자. 만일 우리가 사는 마을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생긴다면 우리는 무엇부터 할 수 있을까?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에게 물어보거나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책들에서 답을 찾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임시방편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또 이렇게 해서 얻어진 정보는 일회성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무엇보다 지역에 대해 알고자 할 때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는 기준점이 없다는 게 큰 문제다.

이렇게 지역에 대한 지식이 한순간의 이벤트로만 머문다면 그동안 축적돼온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공동의 흔적은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흩어져 존재할 수밖에 없고 항상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역의 미래에 대한 창의적인 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부평지역에는 부평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경험과 지식들이 있다. 또 부평사람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의문들이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정보들이 폐쇄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다른 지역에서 축적돼온 정보들과 결합한다면 그곳에서 새로운 질문을 해결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보다 나은 지역 만들기를 위한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부평에서도 여러 차원에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져왔지만 현시점에서 무엇보다 먼저 진행할 일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표준화된 사전을 만드는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전문가들의 손길이 닿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민들의 손에 의해서 지역민들의 말과 글을 담을 수 있는 작업이 돼야할 것이다.

부평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가를 알고자 할 때, 부평 지역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꺼내볼 수 있는 사전을 가능한 빨리 도서관에서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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