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인천투데이|최근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예능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 이혼했어요’ ‘결혼과 이혼 사이’ ‘고딩엄빠’, ‘결혼지옥’ ‘호적메이트’ ‘돌싱글즈’ ‘용감한 솔로육아 - 내가 키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 사유리네 가족’ 등이다.

또한 국내 최초 성소수자 연애 리얼리티 예능 ‘메리 퀴어’ 그리고 ‘남의 연애’가 론칭한다. 이런 상황을 두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보여준다는 명분은 좋지만, 한 편으로는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이 자극적 소재로 소비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기도 한데 어떻게 봐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첫째로 ‘자극적인 소재’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무엇이 자극적이라는 말일까. 획일적인 기준으로 ‘정상인 사람들’과 ‘정상이 아닌 사람들’을 나누고 비정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삶을 향해 자극적 소재라고 부르고 있지는 않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둘째로 그동안 비가시화된 사람들을 가시화될 수 있게 하는 역할은 미디어로서 중요한 역할이다. 그리고 ‘누구를 그리는가’ 보다 ‘어떤 관점을 가지고 그리는가’는 더 중요하다. 부적절한 관점이나 왜곡된 관념을 가지고 사회적 소수자들의 모습을 담는다면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낙인과 편견을 줄이는 효과를 내기는커녕 유지하고 강화하는 효과만 날 수도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카메라 감독, 찍어온 영상들 중에서 어떤 장면을 내보낼지 정하는 그리고 영상에 자막과 여러 효과를 넣는 작가와 편집자, 그리고 스튜디오에 앉아서 이야기를 보태는 연예인 그리고 ‘전문가’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사람들까지 모두 각자의 관점을 가지고 우리에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들이 가진 성역할 고정관념, 성통념, 인습적인 과거의 사고방식 등이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뇌리에 깊이 새겨진 장면이 하나있다. 엄마의 퇴근이 늦어져 아빠가 자녀의 하원을 위해 유치원에 가는 장면이었다. 아빠와 함께 하원하는 아이는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그리고 아빠가 ‘아빠가 와서 좋아’라고 묻는 질문에 아이는 ‘응, 좋아’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자막은 ‘사실 엄마가 오는 게 좋은데...’라고 나왔다. 실제 상황을 완전히 왜곡하는 편집으로 제작자의 관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스튜디오에 모여 앉아서 영상을 보며 이야기를 보태는 연예인들 역시 기존의 성역할 고정관념에 입각한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면이 많다. 이는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드러난다.

전문가 중에서도 가장 전문가로 여겨지는 A씨 마저도 “부모가 이혼을 한 가정의 자녀는 ‘둘이 저렇게 사랑을 하다가도 서로를 떠나는구나. 나도 버림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며 이혼에 대한 고정관념과 낙인을 강화하는 발언을 했다.

A씨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과거(특히 양육자)에서 찾게 만듦으로써 사람들에게 사회구조적 관점을 가지기 힘들게 만든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의 인권‧성평등 인식이 중요하다. 그들의 관점이 미디어의 막강한 영향력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인권‧성평등 인식이 높아져야 한다.

미디어로 부적절한 관점이나 왜곡된 관념이 전해진다고 하더라도 ‘미디어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미디어 리터러시)’을 가지고 있다면 스스로 판단하고 걸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소수자의 가시화라는 명목으로 사회적 소수자를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았지만 ‘가시화’냐 ‘자극적 소비’냐 둘 중 하나로 답변할 수 없는 질문이다.

사회적 소수자의 가시화는 중요하다.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의 삶이 다른 누군가(특히 자신이 ‘주류’ 혹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렌즈나 필터를 거치지 않고 온전히 주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사회문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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