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언 법무법인 위공(여의도‧송도) 대표 변호사

드디어 완전한 인간이 탄생했다. 자신의 수업 권리를 침해한 청소노동자를 형사 고소하고 민사소송까지 제기한 학생들이 나타났다. 이 학생들이야 말로, 한국 사회가 한 목소리로, 국민이 갖춰야 할 덕성으로 칭송하는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실제로 체화한 인물이다.

박병언 법무법인 위공(송도) 대표 변호사
박병언 법무법인 위공(송도) 대표 변호사

문유석 판사가 쓴 ‘개인주의자 선언’은 30만부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공익을 위해 애쓰지 않고, 나는 개인주의자다 라고 선언한 도발적인 제목에 “그래도 되나” 하고 망설이던 많은 독자들을 이끌었던 모양이다(물론 책의 논지는 도발과 달리 상당히 온건하다).

국가라는 권력기구나 교회라는 윤리적 권위기구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이 되기 위해서, 홉스나 로크 등 선각자는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라는 사상을 엄정하게 집필했다. 홉스나 로크는 교회ㆍ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이론화하는 과정에서 ‘종교’나 ‘종교화한 국가’의 권위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공리주의’ 원칙을 도입했다.

즉, 인간은 전통적인 윤리적 존재가 아니라, 자기 보존을 도덕적으로 최우선시하는 존재라고 이론화 한 것이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로 설정한 자유사회는 다만 상호 자기 보존을 위한 룰을 설명할 뿐, 시민을 위해 적극적인 목표를 정해주지 않는다. 어떤 것이 보다 바람직한 삶의 방식인지 제창해 주지도 않는다.

자유주의 국가의 국가 자체는, 국민 개개인의 생활의 내용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정부라는 것은 어떤 권리의 행사가 다른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다양한 ‘생활방식’을 용인하게 만들어져 있다.

이런 자유주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공공심도 애국심도 필요 없다. 주위사람들의 행복을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자유주의 세계에서 최종적으로 출현하는 최후의 인간은 싸워야 할 대의가 없는 인간이며, 역사의 출발점이 된 피비린내 나는 싸움 이전처럼 다시 동물이 된 인간이라고 말한다.

다른 개가 자신보다 뛰어난 행동을 하던, 개로서 자신의 경력이 바람직하지 않던, 혹은 세계의 먼 어딘가에 동료가 죽어가고 있든 전혀 개의치 않는 인간. 후쿠야마는 자유주의가 그리는 최종 인간상은 이런 인간이라고 했다.

연세대 청소용역노동자들은 하청업체 직원이다. 연세대 익명 게시판에서 학생들은 청소노동자들이 월급이 300~400만원에 달하는데도 급여인상 시위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실제 그들의 급여는 196만원이다. 식비 12만원을 더해도 208만원이다. 물론 이건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받은 실제 급여일뿐이고, 연세대가 하청업체에 지급한 노동자 1인당 급여는 300~400만원 수준일 수도 있다.

청소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장시간 먼지와 지저분한 쓰레기를 치우는 과정에서 몸을 씻기 위한 ‘샤워실’과 휴식시간을 달라는 것이었다. 지금 그들은 대학 지하주차장 구석의 열악한 공간에서 휴식 아닌 휴식을 하고 있다. 화장실에서 팔을 씻는 것 외에는 씻지 못한다.

하청노동자들은 원청이 자신의 급여로 하청업체에 얼마를 지급했는지 모른다. 하청업체가 중간에서 얼마를 취득하는지 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나마 하청업체의 문제점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16년 구의역 ‘김군’ 사망 사고였다. 서울교통공사가 240만원을 지급했지만 하청업체가 김군에 실제 지급한 급여는 144만6000원이었다.

2018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고 김용균씨의 원청 급여는 522만원이었다. 하지만 하청업체를 거친 후 실제 급여는 211만7427원 이었다. 사고가 났기에 그나마 알려졌다.

이들은 목이 잘리거나 꺾여서 죽었다. 하청노동자들은 죽어서 산업재해의 문제점을 알리는 의인이 되거나, 살아선 학생들의 공부를 방해하는 불법행위자가 된다(이상의 수치는 모두 남보라 등이 지은 '중간착취의 지옥도'에서 발췌했다).

청소용역노동자를 고발한 연세대 학생들의 행위가 잘못된 것일까? 도덕적인 비난을 넘어서, 자유주의의 교리에 따라 그 학생들이 목적한 시위의 중단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실질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하청업체라는 존재 때문에, 학교는 적정인건비를 책정 하고도 실제급여는 최저임금에 딱 맞춰져 있고, 하루 종일 일하는데도 몸을 씻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같이 개선해 보는 게 좋겠다. 그래야 실제로 이 시위가 끝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연세대 학생들의 고소는 ‘그건 당신들 일이고, 나는 내가 불편한 것을 해소해야 겠다’고만 하고 있어 공감이 떨어진다. 시민들은 이번 사안과 달리 어떤 시위에 대해서는 그 시위가 잘못됐다고 분명히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이번 사건에서 본 바와 같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그것만으로는 완전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토대가 되는 공동체 생활은 궁극적으로는 자유주의 그 자체와 다른 뿌리를 가지고 있다.

미국 건국 당시 미국사회를 만든 사람들은 고립돼 사익만을 추구하는 개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 대부분은 도덕과 청교도 신앙을 함께 지닌 종교적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문유석 판사의 글 행간에도 그가 자유주의자임과 동시에 견지하고 있는 공동체적 도덕관이 묻어 있다.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사회로 전진시킨 민주화운동의 이념적 동력도, 실은 강력한 공동체주의에 기반 한 것이다.

표면적 자유주의이념의 저류에 흐르는 공동체의 윤리를 망각하기 시작할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몰락을 경험할 수도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를 반박하던 현 여당 대표나, 여성가족부 폐지를 국정 과제로 설정한 현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심히 염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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