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옥 다색빛공동체 대표

조신옥 다색빛공동체 대표
조신옥 다색빛공동체 대표

인천투데이|이민전문가들은 급속한 고령화 사회와 다문화사회에 진입한 한국도 향후 5년 안에 영국, 프랑스처럼 이민 국가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따라서 인구·사회·교육·문화·경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사실 이민정책 전담 부처 신설의 필요성에 대해 사회 각 계층 전문가들의 제언이 지속됐다. 그러나 과거 정부에선 심각한 예산 낭비와 이민자들의 불편으로 인한 민원 제기에도 불구하고 중앙 부처별로 중복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 중국 동포 전담 부서를 신설해 달라는 관련 단체들의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같은 민족임에도 외국인으로 분류돼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동포들을 이해하려면 우선 호칭 정리가 중요하다. 조선족은 중국에서 56개 민족 가운데의 하나이며 유일하게 모국을 가지고 있는 소수민족이다. 조선족은 중국 정부에서 통계상 민족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중국 동포로 불러야 맞다.

1953년 첫 조사 당시 112만405명으로 집계됐던 중국 조선족 인구는 2000년 192만3842명을 기록하면서 최고점을 찍은 뒤 지속 감소하고 있다. 2021년 중국 국가통계국 발표를 보면, 중국 조선족 총 인구는 170만2479명이다. 이는 10년 전인 2010년 183만929명 통계에 비해 약 12만8000명이 감소한 것이다.

중국 조선족 인구의 감소세는 중국 개혁개방 이후 조선족들이 해외로 대거 이동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에 체류하는 조선족 수는 지속해 증가하고 있으며, 2020년 1월 기준 한국 거주 중국 동포는 70만8000여명에 달했다.

중국 동포들은 다양한 체류자격으로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중국 정부의 정책으로 중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중국 동포 출신들도 적지 않다.

또 투자 이민, 방문 취업, 유학, 영주권 등등 저마다의 사정으로 체류자격이 각양각색이다. 중국 동포사회에선 ‘귀환 동포’로 불러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조선족의 역사를 알면 이들의 주장에도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래 중국 조선족의 뿌리는 한반도에 있다. 19세기 중엽부터 가혹한 통치를 피해 많은 조선인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중국 동북지역으로 이주했다. 처음에는 월강해 황무지를 개간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한족, 만주족과 어울려 생활하는 형태로 인구수가 많지 않았고 거주도 불안정했다.

1881년 당시 청정부는 개간정책을 시행해 길림황무국(吉林荒務局)을 설치하고 훈춘, 연길 등지에서 이민을 모집했는데 이민자들은 중국 신민으로 됐다. 이렇게 일부 조선인들이 중국에 유입됐다.

1910년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자 많은 조선인과 애국지사들이 대거 중국 동북 지역으로 이주했는데 1918년에 이미 36만명에 달했다. 독립운동가로 이름도 남겨 놓지 못한 많은 이들이 중국의 항일전쟁에 투신해 고귀한 생명을 바쳤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한 이후 한반도가 분단되면서 중국 조선족은 한국과의 내왕이 끊겼다. 약 100년 간 조선족은 중국 역사와 명운을 같이 하면서 점차 56개 민족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1992년 정식으로 한중 수교가 되면서 중국 조선족은 모국인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렇다면 왜 많은 중국 동포들은 한국에 오게 되었을까.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우선 대부분 언어소통에 지장이 없었고, 비행기로 2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근거리이기 때문에 내왕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또한 당시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한국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저임금 노동력이 필요했다.

중국 동포들이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당시 수입의 격차가 아주 컸기 때문이다. 20년 전 중국 동북 지역에서 일반 농민의 1년 수입이 한국 건축 현장이나 식당에서 버는 월급에 비해 적었다.

그래서 아무리 부당한 대우와 인권침해를 당해도 꾹 참고 몇 년 만 버티면 중국에서 아파트를 장만하고 자녀들 교육 뒷바라지를 할 수 있다는 말이 유행했다. 한국에 온 중국 동포들은 현지인들이 기피하는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뭐든지 닥치는 대로 했다. 한국의 대도시 건축물에는 중국 동포들의 땀이 스며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온 중국 동포들의 사정은 시대별로 차이가 현저하다. 1960~70년대 출생 중국 동포 중 대부분 농민 출신과 은퇴한 노동자 출신들이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오게 됐다.

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브로커에게 거액을 지불하고 한국에 왔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꺼리는 힘든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재한 중국 동포 1세대 부모의 희생과 노력으로 어려움을 모르고 성장한 자녀들의 사정은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흔히 1990년대 이후 출생한 중국 청년들은 중국의 경제 발전을 보여주는 분수령이라고 한다. 이들 중 많은 중국 동포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올 의향이 없다고 한다.

현재 중국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고 있으나 한국은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구직난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대학 졸업생들이 취직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 출신이 현지인과 경쟁한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한국 회사에서 외국 출신이 승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상하급 관계가 아주 심한 기업문화가 중국과는 너무 다르다. 중국이라면 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다면 도전할 기회가 더욱 많다고 한다.

한국에서 회사 신입사원의 초봉이 중국에 비해 높은 편이나 인상 폭이 별로 크지 않다. 중국 엘리트 청년들은 본인의 노력으로 일정한 경험이 축적된다면 승진할 기회도 많고 수입 면에서도 더욱 유리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특히 최근 정보화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중국 청년들에게 더욱 많은 기회와 부를 제공하고 있다. 1990년 이후 출생한 중국 동포 출신 중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오는 청년들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 중국에서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거나 창업하는 것이 훨씬 훌륭한 선택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 거주 중인 중국 동포들은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여전히 건설 현장, 공장, 면세점, 음식점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 와서 미용이나 바리스타 같은 기능을 배워 중국에 가서 창업하려고 하는 청년들도 있다. 물론 한국 체류 기간이 오래된 이들 중에는 성공한 사업가들도 적지 않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한국과 중국을 자유롭게 내왕하는 동포들이 있는가 하면, 모든 생활기반을 한국에 두고 가족이 전부 한국에 정착한 사람들도 많다. 중국 동포들은 일반 외국인과는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이미 국내 체류 전체 이민자 중 3분의1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중국 동포 전담 부서의 신설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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